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베트남의 국부로 여겨지는 호찌민의 말을 인용해 한-베트남 관계를 이끌어갈 미래세대에 투자하자고 제안했다.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 역시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의 한시를 인용하며 양국 관계를 돈독히 하자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날 만찬장에는 베트남 측이 준비한 이재용 삼성전자의 깜짝 생일파티도 진행됐다.
윤 대통령 부부는 23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참석했다. 만찬을 주최한 트엉 국가주석은 “베트남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근접할 뿐 아니라 많은 역사·문화적 공통점 그리고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며 “오늘날 양국은 공동 성장을 위해 서로를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중요한 파트너가 됐다”고 만찬사를 시작했다.
베트남에 조선 실학자 등장…트엉 “옛 말에 우린 모두 형제”
트엉 주석은 “베트남은 한국과의 관계를 일관되게 중시하고 있다”며 “한국이 보더 더 큰 역할을 발휘해 역내 평화와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항상 지지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내세우고 있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역할과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포괄적 지지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트엉 주석은 “윤 대통령이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방문한 것은 한국 정부가 베트남과의 관계를 고도로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번 국빈 방문은 윤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 양자방문이다.
트엉 주석은 만찬사 도중 조선시대 실학자 지봉 이수광의 한시를 인용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트엉 주석은 “한-베트남은 중요한 파트너”라며 “베트남 사신 빙극관이 조선의 사신 이수광에게 준 글 중에서 ‘고운사해개형제 상제동주출공차(古云四海皆兄弟 相濟同舟出共車)’라는 구절의 의미가 딱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엉 주석이 인용한 구절은 16세기 베트남 레(黎)왕조의 빙극관(憑克寬)이 1596년과 1597년 사신 자격으로 명나라 연경을 방문해 당시 조선의 사신 자격으로 명나라를 방문한 지봉 이수광과 만나 나눈 필담 중 한 구절이다. 고운사해개형제(古云四海皆兄弟)는 ‘예로부터 온 천하가 모두 형제’라는 의미이고 상제동주출공차(相濟同舟出共車)는 ‘한 배로 건너고 수레에 함께 올라 나아가자’는 의미다. 양국의 돈독한 관계를 400년 전 양국 문인들의 교류에 빗대 표현한 셈이다. 당시 이수광의 한시는 베트남에서 상당히 화제가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해당 한시는 윤 대통령이 먼저 인용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응우옌 쑤언 푹 당시 베트남 국가주석이 방한했을 당시 국빈만찬장에서 위 한시를 인용하며 “수교 이후 30년동안 양국은 눈부신 성과를 이뤘고 한국의 8만 여 한-베트남 가정은 양국을 사돈관계로 잇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尹은 호찌민 명언 인용…“100년 번영 위해서는 사람에 투자해야”
트엉 국가주석의 만찬사에 화답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윤 대통령은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의 말을 인용했다. 윤 대통령은 “호찌민 주석은 ‘10년을 위해서는 나무를 심어야 하고 100년을 위해서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며 “앞으로 100년에 번영을 위해 인재를 양성하고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두 나라를 가깝게 이어주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것은 결국 양국 국민들”이라며 “한국과 베트남은 인적 교류를 통해 깊이 연결돼있고 이것은 결국 우리의 미래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고 힘주어 말했다.
윤 대통령은 부친 윤기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와 베트남의 인연을 언급하며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부각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 수교 직후인 1993년 제 부친이 베트남 학생을 연세대학교에 처음 입학시키며 양국 인적교류를 위해 일한 바 있다”며 “제 부친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소중한 노력이 모여 두 나라의 우정과 파트너십은 동아시아에 귀감이 될 만한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한국과 베트남의 우정을 지켜줄 우리의 미래세대를 위하여’라고 건배를 제의했다.
베트남 ‘용’ 선물에 韓 ‘현대 미술 작품’ 답례…수교 30주년 사진전도
윤 대통령 부부와 트엉 주석 부부는 이날 만찬에 앞서 선물도 주고받았다. 베트남 측은 용 모양의 조각을 준비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베트남측이 마련한 선물을 보고 “용은 한국에서도 상서롭고 길한 의미”라며 “양국은 이러한 문화도 공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답례로 한 현대미술 작가가 제작한 소반과 함을 전달했다. 전통 소반과 함은 목재로 만드는 것과 달리 아크릴 소재를 활용해 내부가 투명하게 보이도록 제작된 작품이었다. “이것이 무엇이냐”는 트엉 주석 부부의 질문에 윤 대통령은 “소반은 음식 등을 올리고 이동하면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다. 함은 귀금속 등 귀중한 물품을 보관하는 상자”라고 상세히 소개했다.
선물 교환을 마친 윤 대통령 부부와 트엉 국가주석 부부는 만찬장 앞으로 사진전을 관람했다. 베트남측은 양국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지난 30년간 양국관계를 상징하는 주요 장면 30장을 선발해 만찬장 앞에 전시했다. 사진전에는 1992년 이상옥 당시 외무부 장관이 양국 수교를 위한 협정문에 서명하는 사진으로 시작해 이번 국빈 방문에서의 윤 대통령 사진까지 전시됐다. 사진전 말미에는 연꽃잎을 활용해 만든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초상이 전시되기도 했다.
정부·재계 총수 총출동한 만찬서 이재용 회장 깜짝 생일 파티
한편 이날 만찬에서는 이 회장을 위한 깜짝 생일파티가 열린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양국 대표단과 수행 기업인 등 100여 명이 참석한 오늘 만찬에서 윤 대통령과 트엉 주석은 자국의 기업인을 상대 정상에게 직접 소개하며 테이블을 도는 환담 시간을 가졌다"며 "이 과정에서 만찬 당일이 이 회장의 생일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며 깜짝 생일 축하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회장은 베트남 측이 즉석에서 준비한 케이크를 받고 만찬에 참석차들로부터 55번째 생일을 축하받았다. 윤 대통령 부부와 트엉 국가주석 부부 모두 와인 잔으로 건배하며 이 회장에게 축하 인사를 건낸 것으로 알려졌다.
만찬장에는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환영하기 위한 전통 문화 공연도 다채롭게 준비됐다. 양국 정상 부부가 입장할 때부터 10개의 태고(큰 북)이 웅장하게 울리며 만찬의 시작을 알렸다. 김 수석에 따르면 이후 만찬장 무대에 베트남 전통 모자춤과 한국의 부채춤이 공연됐다.만찬 말미에 공연단이 아리랑을 합창하자 윤 대통령 부부와 트엉 국가주석 부부가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만찬에는 하노이 스프링롤 튀김, 랍스터 스프링롤, 게살 수프와 애호박 해삼요리, 연자육을 곁드린 레몬그라스 소스 나짱랍스터, 소갈비구이, 하노이식 분짜 등이 올랐다. 만찬주로는 스페인의 ‘상그레 데 토로(Sangre de toro)’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준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