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보기 드물어졌지만 과거 관가에서 쓰던 표현 중에 ‘편대비행’이라는 말이 있었다. 고위 관료가 이동할 때 부하 직원들이 줄지어 따라붙어 걷는 모습이 삼각 편대비행과 유사하다고 해 생겨난 표현이다. 힘이 센 부처의 유력한 관료일수록 자연히 꼬리가 길었다.
요즘 재계에서 편대비행이라는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올 들어 기업 총수와 동행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쉴 틈 없이 이어지자 그 모습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윤 대통령은 올 들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스위스(1월), 일본(3월), 미국(4월), 프랑스·베트남(6월)을 잇달아 방문하고 있다.
물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지도자가 경제 외교를 벌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업이 느끼는 피로감 역시 점차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4대 그룹 총수가 매달 윤 대통령 순방에 동행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총수 중심 출장단이 일렬종대 방문을 이어가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국내의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대통령 순방에 오너가 동행하면 동선, 참석자, 대통령의 관심 주제, 심지어는 식사 메뉴까지 국내외 임직원이 달라붙어 시나리오별로 챙겨야 한다”며 “이 자체도 낭비지만 기업별로 관심 주제와 시장이 모두 다른데 총수들이 출장지마다 동행하는 것은 비효율 아니냐”고 말했다.
단순히 이번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인들을 대통령 순방에 동행시키는 관행 그 자체도 이제는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가령 지난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 당시 게이단렌 소속 일부 기업인들이 함께 한국을 찾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처럼 재계 순위대로 줄지어 동행하지는 않았다. 일본 기업이 우리 시장을 가볍게 봐서가 아니다. 총리와 동행하지 않더라도 비즈니스에는 문제가 없을 정도로 기업과 국가가 성숙했기 때문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따라 전 세계를 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강대국과 사정이 다르지 않느냐고 하는 반론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매달 대통령 뒤를 따라다니는 경영자의 모습이 기업의 격(格)에 도움을 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지난해 취임한 윤 대통령이 친시장과 자유를 외쳤을 때 많은 기업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전임 대통령의 반(反)시장 정책에 그야말로 질려버렸던 탓이다. 지금 윤 대통령의 과제는 기업이 뛰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다. 전 세계 최악의 노동 환경, 최고 법인세율, 기업 할 의욕을 꺾는 상속세율, 미중 갈등에 따른 우리 기업의 투자 불확실성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