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조사 기관들은 배터리 시장이 2~3년 뒤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미래 배터리 시장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이 매우 치열한 가운데 K배터리가 세계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 즉 초격차 전략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K배터리가 반도체와 같이 글로벌 초격차를 달성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산업의 특성과 성숙 단계, 글로벌 경쟁 양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10여 년 전 반도체 치킨 경쟁 끝에 독일의 키몬다, 일본의 엘피다가 무너지면서 한미 중심의 글로벌 과점 체제가 형성됐다. 지금은 기술장벽을 쌓아 중국 반도체의 성장을 저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전기차 배터리는 이제야 폭발적 성장기에 진입했다. 한중일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내재화 투자로 가세하면서 앞으로 글로벌 주도권 경쟁이 더욱 거세질 형국이다.
이러한 글로벌 산업 지형 때문에 정부의 지원정책은 배터리 산업의 특성에 맞춤형으로 설계돼야 한다. 핵심은 K배터리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중국의 가격 공세를 막아내면서 미국·EU의 내재화 투자 및 공급망 규제에 대응하는 것이다.
K배터리의 강점은 기술력, 양산 제조 능력, 우수한 인재에 있다. 이 분야에서 압도적 우위가 지속되도록 정부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연구개발(R&D) 투자는 기술 초격차의 필요 조건이다. 우리나라의 배터리 R&D 규모는 아직도 반도체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연평균 증가율에서도 배터리가 9.7%로 반도체(16.8%)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이 성장 단계이다 보니 대기업도 R&D 투자 여력이 크지 않다. 정부의 마중물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한시적이라도 대기업 R&D 세액공제를 중소기업 수준으로 올려 대기업의 R&D 투자를 적극 유인해야 한다.
양산 제조 능력 초격차는 국내에 ‘마더팩토리’ 투자를 늘려 달성할 수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같이 설비투자 이후 이익 발생이 없어도 세제 지원을 해주는 투자세액공제인 ‘직접 환급 및 공제 양도’ 제도가 도입되면 마더 팩토리 투자 촉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배터리 산업에 우수한 인력을 공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들이 배터리 분야에 진출하고 있지만 대학과 전문 교육기관의 신규 배터리 인력 공급은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이에 배터리산업협회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올해 하반기부터 ‘배터리 아카데미’를 신설해 인력 양성 사업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지역 대학 등과 연계해 지역 배터리 기업에 대한 인력 공급 체계를 보강하는 데도 도움을 주고자 한다.
저가의 중국 배터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미국·EU 등 해외 시장에 대한 현지 투자를 적극 확대하고 현지 기업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EU·일본과 1.5채널의 민·관 배터리 전략 대화를 제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공급망 안보를 중요시하는 미국·EU가 배터리 산업 생태계 구축에 적극적인 점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다. 통상 당국의 활약으로 이들 나라와 상호 신뢰, 상생의 배터리 전략 동맹이 강화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