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손해보험(000400)이 5년 전 전액 손실이 발생한 2000억원 규모의 해외 투자 프로젝트와 관련해 메리츠증권과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소송이 본격화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감독원은 잘잘못을 가리지 않은 채 소송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롯데손보가 기관투자자로서 투자 심의를 제대로 했는지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2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지난 8일 법원은 롯데손보가 메리츠증권과 하나대투를 상대로 낸 600억 원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위한 1차 변론을 열었다. 이날 변론에서는 메리츠증권 측이 작성한 투자설명서나 롯데손보의 투자심의 자료 등 양측이 증거 채택을 요구하고 주요 쟁점을 선별했다. 롯데손보는 2018년 메리츠증권이 주선하고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조성한 1억6000만달러(약 2080억원) 규모 펀드에 약 650억 원을 출자해 미국 프론테라 가스복합화력발전소에 투자했는데, 투자 전에 위험을 고지하지 않았다면서 2022년 11월 소송을 청구했다. 해당 펀드는 2021년 8월 84% 손실처리 됐으며 당시 투자자에는 롯데손보와 교직원공제회·한국거래소·KDB생명·교원라이프 등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선순위대출자에 이어 후순위대출자로 투자했으며 지분 투자는 블랙스톤이 맡았다.
담보권 관련 위험 고지 놓고 진실공방
당시 투자조건을 보면 선순위대출자가 수익에 따른 이자를 가장 먼저 갖되, 지분 투자자인 블랙스톤이 롯데손보 등 후순위대출자에 이자를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을 담았다. 그러나 블랙스톤마저 손실을 안고 물러나는 바람에 롯데손보 등 후순위대출자는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
논란의 핵심은 후순위 대출자 담보권에 관한 내용을 투자 전에 알렸는지다. 당시 투자 조건에는 프론테라 발전소가 선순위 투자자에게 보유 부동산 외에 발전소 운영회사 지분까지 담보로 제공했다. 프론테라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후순위 투자자인 롯데손보는 운영회사 지분에 담보권을 행사할 수 없고, 블랙스톤이 대신 갚아주길 기대해야 하지만 이는 의무사항이 아니었다.
롯데손보는 실질적으로 투자자를 유치한 메리츠증권이 투자설명서에 이 같은 투자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롯데손보 관계자는 “투자설명서는 물론 법률검토서에 발전소 부동산 이외에 발전소 운영회사 지분까지 선순위 대출자가 담보권을 갖는다는 내용이 없었다”고 밝혔다.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투자설명서에는 ‘담보는 부수적인 신용강화요소일 뿐 채무증권의 원리금 상환을 보장하지 않는다’라고 적혀있다. 담보의 종류가 부동산인지 발전소 운영회사 지분인지, 선순위와 후순위 대출자 중 누가 담보권을 실행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반면 메리츠증권은 펀드를 조성한 하나대체가 작성한 투자설명서에 선순위대출자가 운영회사 담보권을 갖는다고 알렸고, 법률 검토서에도 이 같은 내용은 담겨 있었다고 반박했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인프라 투자에서 선순위 대출자가 운영회사 지분을 담보로 갖는 구조는 통상적인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법무법인 태평양이 감수한 법률실사보고서에는 ‘선순위 대출약정에 따르면 운영회사와 자회사 지분이 담보로 제공되어 있다’고 명시했다.
부동산과 인프라 투자 특성 달라 ‘변수’
위험 고지 여부를 놓고 양측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당시 공동 투자자들은 부동산과 다른 인프라 투자 특성 때문에 발생한 논란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투자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발전소는 운영회사 아래 자회사 형태로 여러 발전소를 지배하고 이들에 대한 인허가권과 통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선순위대출자가 발전소의 부동산 자산 뿐 아니라 운영회사 지분도 담보로 요구한다”라면서 “처음부터 후순위대출자에는 운영회사 지분 담보권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위험 고지가 없었고 추가 질의를 통해 담보가 없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부동산에 투자할 때 선순위대출자는 부동산에 대한 담보권을 갖고 후순위대출자는 운영회사 지분에 담보권을 갖는다. 그러나 발전소 투자는 정부로부터 받는 전력 판매권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선순위 투자자가 부동산과 운영회사 지분 모두 담보권 등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
투자설명서 역시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투자자가 검토 후 질의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내용을 담으면서 상세한 후속편이 나오기도 한다. 한 기관투자자는 “롯데손보가 초기에 투자 검토를 완료했다면 다른 투자자의 질의와 메리츠증권의 답변이 담긴 투자설명서나 질의응답 모음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했다.
관건은 롯데손보가 개인이 아니라 전문가인 기관투자자로서 피해를 인정받을 지 여부다. 롯데손보 측은 개인이 아닌 기관도 불완전판매가 있었다면 일부 책임을 판매사에 물을 수 있다는 입장이나, 메리츠증권은 그간 법원이 기관투자자의 불완전판매 피해를 인정한 판례가 드물었다는 점을 들어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이번 소송에서 메리츠증권은 김앤장을 법률 대리인으로 내세웠고 하나대체는 율촌의 조력을 받고 있다. 롯데손보는 법무법인 린과 손잡았는데, 린은 또 다른 불완전 판매 여부로 소송이 진행 중인 ‘더 드루’ 투자 분쟁에서 기관투자자를 대리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 3월 롯데손보의 민원을 받은 후 메리츠증권으로부터 투자 관련 자료를 확보해 검토했으며, 조만간 롯데손보 투자 과정을 검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