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폐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 몇 년이 걸리는지 아십니까? 의과대학 6년에 레지던트 4년, 펠로 2년을 거치고도 몇 년은 더 실전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그것도 누군가 책임감을 갖고 가르쳐줄 사람이 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죠.”
김경환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과장)은 26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필수의료 분야의 위기는 하루아침에 찾아오지 않는다”며 “최소 10년 앞을 내다보고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뒷북 행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흉부외과학회는 최근 불의의 사고로 소중한 동료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응급 환자를 위해 병원 10분 거리에 살았던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교수가 이틀 밤을 새운 뒤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다녀오던 도중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한 것이다. 학회에서 15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동료의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한 김 이사장도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유사한 분야(대동맥 수술)를 담당하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 통씩 카카오톡을 주고받았다”며 “후배들을 위해 흉부외과를 더 좋게 만들자며 미래를 함께 논의하던 동료가 떠났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허탈해했다.
대동맥박리 등 주 교수가 도맡았던 대동맥 수술은 수가 현실화가 절실했던 대표 분야다. 수십 년 전 만들어진 기준에 짜 맞추다 보니 수술료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학회 차원에서 오랫동안 개선을 요구해왔다. 최근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마침내 수가 인상 논의가 속도를 내던 참이었기에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주 교수의 사망 소식에 의료계 안팎에서는 “대체 불가한 인재를 잃었다”며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김 이사장은 “빅5 병원조차 흉부외과에 갑작스러운 공백이 생기면 후유증이 최소 6개월~1년 이상 간다”며 “주 교수뿐 아니라 모든 흉부외과 의사들은 대체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한 해 배출되는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수년째 20명 내외를 오르내리고 있다. 1993년 흉부외과 전문의 수가 57명이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기준 65세 미만 현직 전문의 1161명 중 50대 이상은 60.8%(707명)에 달한다. 젊은 의사들의 기피 현상이 장기화하는 동안 흉부외과 전문의 연령대가 역피라미드식 고령화 구조로 변한 탓이다. 당장 내년에는 흉부외과 전문의 32명이 은퇴할 예정인데 배출되는 전문의는 21명에 불과하다. 현 추세를 지속할 경우 전문의 은퇴와 배출 간 역전 현상이 벌어지면서 자연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김 이사장은 “전문의 수가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SOS를 보냈는데 2009년에야 흉부외과 수가 가산금 제도가 도입됐다”며 “그나마 가산금이 생긴 덕분에 절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기존 방법만으로 버티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흉부외과 지원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으며 지원자가 있더라도 당장 이들의 수련 교육을 담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앞에 닥쳐온 흉부외과의 위기를 타개할 묘안은 없을까. 그는 “전공의 수련을 병원·학회에 맡기는 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전국 수련 병원에 배치될 전공의를 선발해 성적순으로 배치한다면 소위 빅5와 수도권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지방 등 지원자 수가 적은 수련 병원들의 경우 그룹 형태로 묶어 연차별로 순환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수련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효율적이라고 봤다. 병원들이 수익성 고민에서 벗어나야만 궁극적으로 전공의 수련 환경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체외순환사 등 진료보조인력(PA)의 법적 지위가 확보돼야 한다는 소신도 내비쳤다. 그는 “일부 병원들이 간호조무사에게 불법으로 대리 수술을 시키는 것과 흉부외과 등 전공의 충원이 어려운 진료과에서 전문의 지도하에 PA를 사용하는 것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며 “필수의료 분야 인력난을 해소하려면 미국·캐나다 등 선진국처럼 PA의 법적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