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앙은행들은 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 갖고 있는 전 세계적 지배력이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더 이어진다고 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른바 ‘브릭스 공용 통화’가 추진되고 남미, 중동 등지에서 중국 위안화 결제가 증가하는 등 이른바 ‘탈달러’ 움직임이 나타나지만, 달러 패권의 붕괴를 말하긴 이르다는 이야기다.
영국의 중앙은행 관련 싱크탱크인 공적통화금융포럼(OMFIF)은 27일(현지 시간) 75개국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례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10년 후 각국 중앙은행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54%일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의 58%보다는 낮지만 주요 통화 가운데 여전히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앙은행 가운데 향후 2년 동안 달러화 익스포저를 축소하겠다는 응답은 전체의 10%에 그친 반면 달러화 익스포저를 늘리겠다는 응답은 16%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달러화의 대안을 채택하라고 요구해 온 일부 국가를 당혹스럽게 할 만한 조사 결과”라고 논평했다. 8월 열리는 브릭스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로 공용 통화의 조성 문제가 떠오르고 있으며,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신흥국들의 달러화 의존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중국 정부를 중심으로 국제화 움직임이 활발해 향후 달러 패권을 위협할 것으로 주목 받는 위안화의 경우 외환보유액 비중이 증가하되 그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사 결과 외환보유액 대비 위안화 비중은 현재 3%에서 10년 후 6%로 커질 것으로 집계됐지만, 달러화와 비교하면 상당히 적다. 또한 위안화 비중을 늘리겠다는 응답은 지난해 30%에서 올해 13%로 크게 줄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니킬 상하니 OMFIF 전무이사는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10년 안에는 위안화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고 싶지만 지금은 그 때가 아니라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러시아 제재가 지정학 문제를 민감하게 보게 만든 면이 있다”며 “일부 응답자는 미중 간 긴장관계를 볼 때 당장은 중국에 대한 투자를 꺼릴 것이라 답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OMFIF는 달러화의 비중 축소 수준이 ‘점진적’으로, 그 지배력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상하니 전무이사도 “탈달러화는 지난 10년간 역사적 추세”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 국제통화기금(IMF) 집계 기준 달러화가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한 비중이 70%에 달했음을 고려하면 영향력의 감소를 체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