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강 바닥도 파내고 정리를 해마다 하더니 요즘은 안 하는 것 같더라고요. 비가 10분만 더 왔어도 피해 규모는 훨씬 커졌을 거예요.”
2022년 8월 11일 은산천이 끼고 도는 충남 부여군 은산면에는 시간당 258.4㎜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2명이 숨졌고 이재민 120가구, 농경지 유실·매몰 500여 ㏊, 주택·상가 144채 침수·파손 등 580억 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다.
파출소·면사무소·슈퍼·정육점·약국 등 시설이 몰려 있는 은산사거리는 당시 은산천 제방을 넘은 강물과 진흙으로 가득 찼다. 인근에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민홍기(75) 씨는 “장정들도 나다니지 못할 정도였다”며 “가게 안으로 들어온 진흙과 물을 퍼내느라 고생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은산사거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종윤 씨는 약국 내부로 흘러든 강물 때문에 약국 바닥에 정리해둔 물건들을 모두 버려야했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약국을 운영하면서 목격한 가장 큰 수해였다고 밝힌 김 씨는 “물막이판이나 모래주머니를 군에서 지원해주는 것은 없다”며 “물이 들어올 수 있는 틈에 테이프를 붙이거나 실리콘을 쏠 생각도 해봤지만 그것으로 밀려드는 물을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로부터 1년여가 흐른 이달 27일에도 지난해 폭우의 흔적은 은산천 곳곳에 즐비했다. 상류에서 쓸려내려온 나뭇가지와 토막들이 교각에 걸려 있고 강가 산책로 아래 석축은 무너진 채로 방치돼 있었다. 1992년부터 은산면에 거주했다는 한 주민은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을 은산천으로 안내하면서 “물이 흐르는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풀이 자랐고 지난해 수해 때 쓸려내려온 잔해가 그대로 방치돼 있어 또 강에 물이 차면 제대로 빠질지 모르겠다”며 올해 장마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부여군과 인접한 청양군에서도 올해 다시 폭우가 내린다 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대다수였다. 피해 복구조차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직1리 주민인 조 모 씨는 “지난해 수해 이후 무너진 하천 제방은 임시 복구를 했지만 완전 복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범람한 하천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주택에 거주하는 조한무(79) 씨는 “온직리에 위치한 턱골제 저수지의 제방이 무너져 인근 논밭의 피해가 컸다”면서 “현재 저수지 수로에 석축을 쌓는 정비를 하고 있지만 온직천 정비는 아직이다”고 했다. 청양군은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온직천 개선 복구 사업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고 향후 복구 계획을 밝혔지만 온직천 정비를 위한 공사 발주는 2024년으로 예정돼 있어 올해에도 온직천 범람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피해 복구가 더디고 하천 정비가 지연되는 것은 지방 하천의 관리와 정비의 책임이 중앙정부에서 자치단체로 넘어가면서 관리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2020년 이전 지방 하천 정비사업 예산의 50%를 국가가 부담한 데 반해 2020년 이후부터는 보조금 지원이 끊긴 상태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하천 관리에 격차가 생기며 관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류용욱 전남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소하천의 경우 이전에는 행정안전부에서 관리를 했는데 요즘은 지자체로 이관된 상황”이라며 “지자체에도 소하천에 대한 관리·정비 계획은 수립돼 있지만 실제로 예산 등의 문제로 정비가 안 되고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지방 하천 관리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환경부가 발표한 하천 정비 현황에 따르면 지방 하천 정비 완료 구간의 비율은 49%로 국가하천의 79%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손민우 충남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기후변화로 집중호우의 빈도와 규모가 달라지고 있어 이에 맞는 하천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며 “현재의 기준이 우리가 요구하는 사회 안전성과 부합하는지 살펴보고 제방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 교수는 “충남 지역에 치수·방제 인력의 전문성이 매우 떨어지는데 이들이 치수 대책을 세우고 있어 상당히 위험한 수준에 노출돼 있다고 본다”며 변화하는 기후 환경 속에 재해를 예방·관리하기 위해 전문가를 지자체가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