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학생은 대구에서 2시간 동안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숨졌다. 경기 용인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70대 남성이 구급차로 이송 중 응급실을 찾지 못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고열에 시달리던 5세 아이 역시 서울 한복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응급실에서 사망했다.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의료 서비스로 알려졌던 대한민국 의료 체계의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의사 부족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전공의들이 인기 학과인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에 쏠리는 반면 필수의료 분야인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지원을 꺼리면서 필수의료 분야의 공백을 재촉했다.
도서 산간을 비롯한 지방 의료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충북 청주의 한 종합병원은 최근 심장내과 의사 모집 공고를 내면서 무료 숙소 제공을 포함해 연봉을 10억 원으로 제시했다. 그런데도 지원 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 속초 의료원 역시 3월에 응급실 근무 의사 채용을 위해 4억 1000만 원의 연봉을 내걸었다. 퇴직 의사를 밝힌 세 명의 의사 연봉이 각각 3억 원이었지만 이보다 1억 1000만 원을 높인 뒤에야 1명을 가까스로 채용할 수 있었다. 지방 필수의료 인력의 부족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런데도 우리 의과대 정원은 18년째 묶여 있다. 2006년 의약분업 과정에서 의료계의 요청에 따라 결정된 3058명의 의대 입학 정원이 아직도 금과옥조로 여겨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인구 1000명당 국내 의사 수는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7명)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는 의사 부족 문제를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해외 주요 국가들은 의대 정원 확대로 고령화 대비에 나선 지 오래다. 독일은 2015년 이후 정원을 매년 0.7~2.2%씩 확대해온 가운데 의대 정원(1만 1752명)을 올해 말까지 최소 5000명 이상 증원할 계획이다. OECD 통계상 독일은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2020년 기준)가 한국(2.5명)보다 1.8배나 많은데도 정원 확대는 당연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영국도 2002년 4300명에서 2021년까지 9280명으로 대폭 늘렸고 미국도 20년간 38%나 키웠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 역시 최근 10년 동안 의대 정원을 1705명 늘려 총 9330명으로 만들었다.
의사 인력 부족 문제의 해결책은 의대 정원 확대에서 시작돼야 한다. 300~500명 증원은 해법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증원 규모도 파격적이어야 한다. 마침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7일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의대 정원을 연간 5%씩 증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료 수요 증가로 2050년에 2만 2000명의 의사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더욱이 의사 양성에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하면 전공의 학과 정원 조정으로 필수의료 분야 지원에 나서야 한다. 학과별 정원 조정으로 특정 인기 학과의 쏠림 현상을 방지하면서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 확충을 꾀할 수 있다. 의사 본연의 역할을 외면한 채 돈벌이에 급급한 전공의들의 특정과 쏠림 현상을 방치하면 문제 해결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대한의사협회 등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의사 인력양성 확대를 위해 소비자와 환자단체 등의 의견도 수렴하겠다고 하자 의사협회는 정부와 논의 중단 검토 카드로 맞서고 있다. 지방 의료 붕괴와 필수의료 인력 부족으로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인데도 의사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집착하고 있다. 의사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직업인이지만 윤리 의식을 가져야 하는 의료인이기도 하다.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는 취지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지 않았다면 ‘제 밥 그릇 지키기’에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