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이 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항공(020560)의 기업결합에 대해 잠정 중단 결정을 내리며 양대 국적항공사의 합병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대한항공이 EU 당국의 시정 조치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직접 심사 기한 연장 요청을 했는데 그만큼 합병 승인 문제가 풀기 어렵다는 얘기다. 미국·일본 당국의 승인도 아직 남아 있어 양 사의 기업결합은 올해를 넘어갈 가능성이 커 양대 국적사의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29일 항공 업계에 따르면 EU집행위원회(EC)는 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심사 기한을 연장했다. EU 당국은 대한항공이 제출한 추가 자료를 보고 8월 3일까지 합병 승인 여부를 통보할 예정이었다.
이번 조치로 결론은 최소 2개월 가량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시정조치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EU집행위와 심사 기한 연장 협의를 진행했으며 심사 연장이 최종 결정됐다”며 “심사 연장 기간 내 EU집행위와 시정 조치 협의를 완료하고 최종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2021년 1월 EU 당국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했다. EU 당국은 올 2월까지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6월로 미뤘고 이번에 다시 늦췄다. 기업결합 심사 대상 14개 국가 중 11곳이 승인을 했고 EU·미국·일본 경쟁 당국만 남았다. 미국과 일본 당국은 현재까지 공식적인 심사 피드백조차 없어 기업결합 심사는 시장의 예상보다 더 장기화 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이 2020년 아시아나 인수를 발표한 후 업계는 이 같은 가능성을 제기했다. 동종 업계 간 기업결합으로 시장 지배력 상승→가격 상승 및 품질 저하 우려로 각국 당국들이 합병 심사에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EU 경쟁 당국은 지난해 초 HD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기업결합에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 대한 시장 지배력 상승 우려를 이유로 퇴짜를 놓았다. 반면 조선업을 영위하지 않는 한화그룹이 올 초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다고 EU 당국에 합병 승인을 요청했을 때는 6개월도 되지 않아 승인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유럽과 미국 주요 노선의 슬롯(특정 시간대 이착륙 할 수 있는 권리)을 40여 개나 반납하며 시장 지배력을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인천~파리·프랑크푸르트·로마·바르셀로나 4개 노선의 일부 슬롯을 내줘야 한다. EU 당국이 요구하는 각 유럽 노선에 대한 경쟁 항공사 진입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항공기 부족 등 영향으로 쉽지 않다. 현재 에어프레미아와 티웨이항공이 유럽 취항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두 회사 모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유럽 노선을 대체하기는 무리가 있다. 에어프레미아는 현재 5대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티웨이항공은 30대를 가지고 있지만 장거리를 오갈 수 있는 항공기는 지난해 초 들여온 A330-300 3대뿐이다. 현재 심사를 받고 있는 미국 당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 노선도 투입돼야 해 비행기는 더 필요하다.
문제는 합병이 장기화하면서 아시아나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하늘길이 열리면서 각 항공사들은 빠르게 정상화를 하고 있다. 이에 신규 채용을 늘리고 기재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산업은행 체제에 있는 아시아나는 정반대다. 올해 신규 채용을 하지 못했고 2분기 현재 항공기 대수는 78대로 10년 이래 가장 적은 숫자다.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인 전년 대비 48%나 줄어든 925억 원을 기록했다.
물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합병에 대한 의지는 강력하다. 조 회장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총회 중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기에 100%를 걸었다”며 “무엇을 포기하든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