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365일 24시간 응급콜 받는다…수술 사망률 20→3%로 낮춘 '대동맥폰'의 비밀

[메디컬인사이드] 이대대동맥혈관병원 EXPRESS 팀

이대서울병원, 전 세계 최초로 대동맥혈관병원 진료 시작

'신의 손' 대동맥수술 대가 송석원 교수, 초대병원장 영입

응급실 체류시간 제로…EXPRESS 시스템 상시 가동 나서

지난 16일 이대서울병원 의료진들이 헬기를 통해 병원 옥상 헬리포트에 도착한 전원 환자를 이송 중이다. 사진 제공=이대서울병원지난 16일 이대서울병원 의료진들이 헬기를 통해 병원 옥상 헬리포트에 도착한 전원 환자를 이송 중이다. 사진 제공=이대서울병원




"교수님, 여기 제주도입니다."



16일 오후 송석원 이대대동맥혈관병원장(심장혈관외과 교수)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울렸다. 송 원장이 잠을 잘 때조차 머리 맡에서 떼어놓질 않는다는 일명 '대동맥폰'이다. 서귀포의료원에서 걸려온 전화는 복통으로 외래진료를 받으러 온 80세 여성 환자에게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시행한 결과 '급성 하행 대동맥박리'가 발견되어 전원이 필요하다는 연락이었다. 대동맥박리(aortic dissection)는 심장에서 온 몸의 장기로 혈액을 내보내는 역할을 담당하는 혈관인 대동맥의 내막이 찢어지는 질환이다. 대동맥 내막에 미세한 파열로 시작해 높은 압력을 견디지 못한 중막이 찢어지고 막과 막 사이로 피가 새다보면 대동맥 벽이 분리된다. 다리 쪽으로 향하는 하행 대동맥박리는 그나마 심장에서 가까운 상행 대동맥박리보다는 위험도가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대동맥 전문가에 의한 진단과 치료가 시급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상행 대동맥박리는 대동맥 파열로 인한 급사 위험이 높아 수술이 원칙이다. 그에 비해 하행 대동맥박리는 파열 위험이 낮고, 수술 후 후유증 위험이 높아 내과적 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 실전에선 모든 가능성에 대비가 필요하다. 약물치료를 시행하며 경과를 지켜보다 합병증이 발생해 응급수술이 불가피한 경우는 물론, 반대 상황도 부지기수다.

16일 이대서울병원 의료진들이 헬기를 통해 병원 옥상 헬리포트에 도착한 전원 환자를 이송 중이다. 사진 제공=이대서울병원16일 이대서울병원 의료진들이 헬기를 통해 병원 옥상 헬리포트에 도착한 전원 환자를 이송 중이다. 사진 제공=이대서울병원


"헬기 준비되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보내시죠."

침착한 목소리로 통화를 마친 송 원장이 카카오톡 메신저를 켰다. 86명이 참여 중인 단톡방에 '급성 하행 대동맥박리 환자가 전원을 올 것'이란 메시지가 올라오자 읽은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가 순식간에 10대로 떨어졌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대동맥혈관병원의 개원을 앞두고한달 전부터 준비해 온 익스프레스(EXPRESS) 시스템이 첫 가동되던 순간이다. EXPRESS는 외부에서 대동맥질환 환자의 전원 연락이 왔을 때 관련 의료진부터 행정파트까지 문자가 전송되어 환자가 도착하는 즉시 수술장으로 이동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시스템이다. 단순히 본 수술에 들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일 뿐 아니라 정밀성과 안전성을 담보해 대동맥수술 성공률을 높이겠다는 팀원들의 의지가 담긴 용어다.

"열어야죠."



이대서울병원은 상황을 보고 받은 임수미 원장의 지시와 함께 개원 이래 처음으로 옥상 헬리포트를 열고 환자를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광주에서 출발한 헬기가 제주공항에서 환자를 태우고 서울로 도착한 건 오후 7시 50분께였다. 의료진이 헬기에서 내린 환자를 즉각 응급중환자실(EICU)로 이송하고 약물을 투입해 모니터에서 안정적인 활력징후가 확인되자 비로소 긴박했던 상황이 종료됐다. 이대대동맥혈관병원 정식 개원을 사흘 앞두고, 야심차게 준비해 온 EXPRESS 시스템의 진가를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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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원 이대대동맥혈관병원장이 모니터를 통해 수술 중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사진 제공=이대서울병원송석원 이대대동맥혈관병원장이 모니터를 통해 수술 중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사진 제공=이대서울병원


대동맥질환은 흉부외과에서 다루는 심혈관질환 중에서도 치사율이 가장 높다. 일단 터지면 병원 문턱을 넘기도 전에 사망할 확률이 60%에 이르는데, 수술 중 사망하거나 생존하더라도 반신마비·언어장애 등 신경학적 후유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송 원장은 "2008년 펠로우로 부임할 당시 수술 중 사망률이 20%에 달했다"며 "수술실에 올라가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많아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앰뷸런스에서 수술실 침대로 바로 옮겨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고 회고했다. 송 원장은 이광훈 영상의학과 인터벤션 교수(이화혈관연구소장 겸 대동맥센터장), 남상범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등 일명 송 사단과 함께 15년간 밤낮없이 응급수술에 매달리며 대동맥수술의 새 역사를 썼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재직 중이던 2008년 국내 첫 대동맥클리닉을 열었고, 2012년 6월에는 수술과 인터벤션(시술)이 한 곳에서 이뤄질 수 있는 하이브리드 수술실을 개소했다. 지난해 내장혈관이 위치한 부위에 흉복부 대동맥류가 발생했지만 수술이 불가능했던 70대 환자에게 개흉·개복 없이 t-브랜치를 사용한 혈관 내 스텐트-그라프트 삽입술을 국내 최초로 성공한 것도 이들이다.

이광훈(왼쪽부터) 영상의학과 인터벤션 교수와 송석원 병원장(심장혈관외과 교수), 남상범 마취통증의학과 교수가 이대대동맥혈관병원 운영 목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이대서울병원이광훈(왼쪽부터) 영상의학과 인터벤션 교수와 송석원 병원장(심장혈관외과 교수), 남상범 마취통증의학과 교수가 이대대동맥혈관병원 운영 목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이대서울병원


통상 6시간 이상 걸리는 시술을 첫 시도임에도 2시간 만에 능숙하게 해내는 모습에 대동맥 분야 세계적 대가인 쾰벨 독일 함부르크대학병원 교수조차 '신의 손'이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남 교수는 대동맥수술 성공 신화의 비결로 '환자를 향한 진심'과 ‘팀웍’을 꼽았다. 이 교수 역시 “송 원장이 1년간 미국 연수를 가면서 대동맥폰을 맡기고 갔던 기억이 난다”며 "(연수기간이라) 평소보다 콜이 덜 왔을텐데도 전국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전화가 걸려와 새삼 놀랐다"고 거들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자를 살리는 데만 매달렸기에 ‘응급실 체류 제로 시스템’을 구현하고 극악무도했던 대동맥박리 사망률을 3%대로 낮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대대동맥혈관병원 의료진들이 지난 20일 익스프레스 전원 환자를 대상으로 복부동맥 치환술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이대서울병원이대대동맥혈관병원 의료진들이 지난 20일 익스프레스 전원 환자를 대상으로 복부동맥 치환술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이대서울병원


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인력난이 최근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지만, 대동맥질환은 송 원장이 발을 들이던 10여 년 전에도 의사가 부족했다. 2018년 방영됐던 드라마 ‘흉부외과: 심장을 훔친 의사들’에서 배우 엄기준(최석한 역)이 '대동맥수술 할 의사를 찾지 못하면 언제든 전화하라'며 응급실에서 명함을 돌리는 장면은 실제 송 원장의 사례다. 새벽 단잠을 자다 전화를 받으면 피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내에게 전화가 왔을 때 만큼은 아니지만 최대한 친절하게 받으려고 노력한다"며 "다른 병원에서 못 하는 환자인데 수술하러 가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오히려 새벽 3~4시에 카톡방이 울려도 실시간 40~50명이 확인하는 모습에 힘을 받는다고도 했다.

이대대동맥혈관병원 의료진들이 지난 22일 하이브리드 수술실을 오픈하고 첫 환자에게 부 대동맥 스텐트 삽입술(EVAR)을 성공적으로 실시했다. 사진 제공=이대서울병원이대대동맥혈관병원 의료진들이 지난 22일 하이브리드 수술실을 오픈하고 첫 환자에게 부 대동맥 스텐트 삽입술(EVAR)을 성공적으로 실시했다. 사진 제공=이대서울병원


송 교수팀은 2008년 32례로 시작해 2021년 초 개흉·개복, 하이브리드를 합쳐 누적 3000례 기록을 세웠다. 작년 한해동안 강남세브란스병원 대동맥혈관센터에서 시행한 대동맥수술 건수는 620례에 달한다. 국내 의료기관 중 가장 많은 것은 물론, 수술이 필요한 국내 대동맥 환자 5명 중 1명을 수술했다는 의미다. 이들은 “이대서울병원에서 국내 첫 대동맥혈관 전담 병원을 통해 대동맥 치료와 의료계 전반에 긍정적 변화를 끌어내고 싶다”고 전했다. 19일 첫 진료를 시작한 이대대동맥혈관병원은 이미 계획된 대동맥수술만 매일 1~2건씩 소화하고 있다. 병원에서도 진단·수술·시술이 한 곳에서 이뤄질 수 있는 하이브리드 수술실과 대동맥질환 전용 중환자실, 일반병실 등을 제공하며 전폭적 지원에 나섰다. 송 원장은 "우수한 의료팀에 최고의 시설, 장비를 갖춘 이대대동맥혈관병원이 국내 대표 의료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힘쓰겠다"며 "새 병원 시스템이 본 궤도에 오르면 한해 1000건의 대동맥수술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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