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여명]K푸드 날개 꺾는 정부의 가격 통제

정영현 생활산업부장

영업이익률 한자릿수 식품업계

내수 넘어 수출 안간힘 쓰는데

정부 압박에 줄줄이 가격 인하

이미지 추락·사업 계획 난장판





최근 식품 업계를 표적으로 삼아 정부가 벌인 가격 전쟁은 맹렬한 기습전을 방불케 했다. 겁만 주는 소규모 국지전 따위는 없었다. 처음부터 최고 장수인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가 선봉에 나섰다. 국제 밀 가격이 내렸으니 밀을 주재료로 하는 제품 가격도 바로 내려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맞는 말이기는 하나 원재료 가격의 시간 차 반영 같은 업계 사정은 고려하지 않았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공영방송 보도, 소비자단체 성명, 공정거래위원회 담합 조사 가능성 등을 무기 삼아 업계 분위기를 단번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결국 줄줄이 투항했다. 라면 1위 기업 농심이 제일 먼저 백기를 들었다. 13년 만에 대표 상품인 신라면 가격을 인하하겠다고 발표하자 다음 날 오뚜기·삼양라면·팔도가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제과·제빵 기업들은 눈치껏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과자·식빵 가격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신라면을 비롯해 참깨라면, 삼양라면, 새우깡, 빠다코코낫, 파리바게뜨 식빵의 가격표가 바뀌었다.



전쟁은 쉽게 끝났지만 식품 업계는 난장판이 됐다. 마치 그간 국민들의 얇은 지갑을 털어온 ‘못된 기업’ 이미지를 떠안게 된 점은 둘째 치고 당장 올 한 해 연간 사업 계획이 휴지 조각이 됐다. 지난해 말 내내 모든 임직원이 머리를 맞대고 어렵게 세운 목표들이 연초도 아니고 한 해의 정중앙에서 엉망이 돼버렸다. 국내외 공장 증설, 안전장치 마련, 인력 추가 확보, 수출 지역 다변화, 신규 투자 등 세부 계획 하나하나가 다 뒤틀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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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라면 값 100원, 과자 값 50원 내렸는데 기업 경영에 얼마나 타격이 있겠냐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몇몇 제품만 골라서 내리기로 했으니 ‘꼼수 인하’ 아니냐는 지적도 벌써 나왔다. 하지만 유난히 낮은 식품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을 보면 결코 앓는 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주요 식품 기업 중 올 1분기 기준 영업이익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곳을 찾기 어렵다. 농심이 7.4%, 오뚜기와 삼양식품이 각각 7.6%, 9.7%를 기록했다. 이마저도 라면 수출 호조 덕분이다. 내수 시장에서 벌어들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제과 업체도 마찬가지다. 롯데웰푸드가 1.9%, 해태제과는 5.8%였다. 종합 식품 기업인 CJ제일제당의 식품 부문 영업이익률도 3.5%에 그쳤다.

정부가 밀·밀가루에 이어 조만간 2차 표적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되는 우유 기반 식품 업체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대표적으로 매일유업의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2.8%밖에 되지 않는다. 간신히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저출산 고령화 인구구조 속에 이들의 사정은 매해 나빠지고 있다. 그래서 없는 형편에도 쪼그라드는 내수 시장의 한계를 넘어 세계시장으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살아남기 위해 바이오 등 신기술을 장착하려 발버둥을 치고 있다.

심지어 식품 업체들을 몰아세워 ‘가격 인하’라는 항복을 받아낸 날, 정부가 내놓은 식품 산업 중장기 지원책에도 식품 업계의 어려운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난달 28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글로벌 K푸드 시장 확대를 위한 제4차 식품 산업 진흥 기본 계획’에는 인구 감소에 따른 내수 시장 정체, 최저임금 인상, 인력 부족, 연구개발(R&D)·시설 투자 경쟁력, 기후변화로 인한 원자재 수급 불안 등이 식품 기업들이 현재 떠안고 있는 난제로 명시돼 있다. 정부도 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당장 물가 관리의 쉬운 수단이라는 이유로 식품 기업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정부가 앞장서 이들을 제 배만 채우자고 가격을 올려온 나쁜 기업으로 만들었다. ‘K푸드’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를 향해 훨훨 날기를 바라면서 밀어붙이기식 가격통제로 기업의 날개를 꺾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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