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요새 같은 게 아닌가 싶어요.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게 가족이잖아요. 그래서 가족에 대해 흥미가 갔던 것 같아요.”
아리 애스터(36) 감독의 영화에서 ‘가족’이란 키워드는 빼놓을 수 없다. 단, 으레 붙는 ‘힐링’이란 수식어는 금지다. 영화 ‘유전’과 ‘미드소마’로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공포 영화의 새로운 양식을 확립한 아리 애스터 감독은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도 가족의 굴레에 대해 탐구한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엄마(패티 루폰)’를 만나러 여정을 떠난 ‘보(호아킨 피닉스)’가 기억과 환상, 현실이 뒤섞인 공포를 경험하게 되면서 겪는 일을 그린 영화다. 영화에서 엄마의 존재는 보가 떠안은 모든 공포 중 가장 끔찍한 것이다.
아리 애스터 감독이 영화를 구상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긴 시간이 걸려 구상한 만큼 ‘보’에는 그 자신이 많이 담겨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광진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제 어떤 면들을 통해 보라는 인물이 시작된 것 같다”면서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갈등하거나 죄책감을 가지는 게 보의 감정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말했다.
모성과 억압에 대한 영화 속 묘사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리 애스터 감독의 경험을 녹여낸 것이다. “한국 가족의 관계에 대해 들으면서 유대인 가족과 유사점이 많다고 생각하게 됐다”면서 “영화는 ‘방대한 유대계 농담’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가 신격화 되는 부분이 농담의 ‘펀치라인’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0년 영화 ‘조커’를 통해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받는 등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보를 맡아 연기한다. 그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유리창으로 돌진하거나, 다락방에서 떨어지고 욕조에서 구르는 등 다양한 액션 연기도 직접 소화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호아킨 피닉스와의 호흡에 대해 “뛰어난 배우가 뛰어난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놀랍진 않았다”면서 “(피닉스는) 자신을 던져서 연기에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제 작품에 열정적으로 임해줘서 감사했다”고 전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한국 영화의 열성 팬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고전 영화인 ‘오발탄(1961)’을 꼽았을 정도다. 그는 “한국 영화가 유머러스하고 영화 구조나 형태를 가지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부분들에 매료됐다”면서 “특히 한국 영화에는 멜로 드라마가 많은데, 미국은 이 장르가 (농담의) 관용어로 쓰일 정도로 잘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이 처음 접한 한국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다. 그는 “이창동 감독은 천재적인 감독이다. 감독 겸 소설가라고 알고 있는데 그런 점이 작품에서 반영되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영화는 보의 여정을 따라가면서도 한편으로 난해함을 느끼게 된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이번 영화는 가장 적게 자기검열을 담아낸 영화다.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보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전략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5일 개봉. 17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