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갑자기 ‘부용치훼(不容置喙)’라는 옛 중국 괴담 속 표현으로 언론이 떠들썩했다. 발원지는 중국 외교부의 마오닝 대변인으로 대만해협에서 유사시 한반도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박진 외교부 장관의 CNN 인터뷰 발언에 대한 브리핑의 날 선 표현이었다.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으로 다른 사람이 말참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마오닝이 가져온 ‘부용치훼’는 명나라 말기인 1640년 6월 5일 태어나 청나라 초기인 1715년 2월 25일까지 중국에 살았던 작가 포송령의 괴담 소설집 ‘요재지이'에 등장하는 ‘삼생(三生·삼대에 걸친 악연)’에 나오는 표현이다.
‘요재지이’를 자료로 조너선 스펜스가 쓴 역사책 ‘왕 여인의 죽음’은 이러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1668년 7월 25일 지진이 탄청현을 덮쳤다. 달이 막 떠오르는 저녁 무렵이었다.” 포송령이 요재지이를 집필하던 시대적 상황은 지진 등 자연재해와 왕조 교체로 산산조각 난 백성들의 삶을 누군가 어루만져줘야 할 시대였다. 과거 시험에 연거푸 실패하던 포송령은 신기하고 괴이한 이야기들을 모아 상상력을 가미해 각색함으로써 실의에 빠진 스스로를 위로했다.
‘삼생’은 과거에 낙방해 울화가 치밀어 화병으로 사망한 선비가 저승에서 주인공을 고발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불교적 윤회 의식에 따라 다음 생에 반란을 일으킨 도적 떼의 일원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전생에 원수였던 선비를 자신을 생포한 관리로 대면했다.
“나는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다른 포로들은 모두 석방됐지만 끝까지 남은 주인공은 “뭐라 변명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여기서 “뭐라 변명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라는 부분의 원문이 ‘부용치훼’다. 죽음을 앞둔 포로 신분의 절망적이고 무력한 상황에서 등장한 표현이다. 문맥뿐 아니라 ‘요재지이’의 원문을 이해하는 교양인이라면 외국에 대해서 결코 쓰지 말아야 할 표현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