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불린다. 일견 타당한 말이나 그 말이 곧 인류가 지구의 주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인류는 지구의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은혜를 입는, 수많은 구성원 중 일부일 뿐이다.
연극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는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을 은유와 함축을, 그리고 때로는 유머를 통해 통렬히 비판한다.
작품의 배경은 근미래의 지구다. 인간이 일으킨 문제로 40일간의 대화재가 발생하고, 지구의 멸망이 임박한다. 인간과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종자를 담은 배가 바다로 출항하지만, 모든 종이 선택받을 수는 없다. 탑승객들은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에 나선다.
작품에는 한국의 과학보육원 ‘리틀 노벨스’ 출신인 노벨상 2회 수상자 물리학자 메이, 식물학자 에이프릴, 미국 공군 악토버가 인간 측 대표로 출연한다. 이와 동등한 수준의 역할을 극 내에서 부여받는 것이 식물과 동물이다. 하남 나무 고아원의 어린 나무와 중국의 고사리, 일본 후쿠시마의 은행나무와 홀로그램 동물원의 비버, 러시아의 잣나무도 서바이벌 게임의 당당한 참가자다.
극 중 인간들도, 관객들도 초반에는 이 설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떻게 인간과 동식물이 생존을 걸고 같은 지위에서 경쟁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생각은 너무나 이기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동물과 식물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지구 전체 차원에서 보면 오히려 미래를 위해 남겨야 할 종은 인간이 아니라 식물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은 대화재가 지난 뒤 싹을 피워 다시금 지구를 풍요로운 땅으로 복원해 내고, 또 다른 인류도 만들어 낼 것이다.
양근애 드라마터그는 “과학이 인간을 위해 쓰일수록 인간 이외의 존재들이 배제되고 죽어 나간다”며 “인간은, 아주 오래 아주 다방면에서 지구를 망하게 해놓고 이제 와서 지구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팬데믹을 겪으며 인간은 우리 우리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나약하고 작은 존재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됐다. 지금 우리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제대로 탈피하지 못한다면, 지구와 자연은 팬데믹보다 더 큰 벌을 우리에게 내릴지도 모른다.
7~9일에는 실시간 수어통역 공연도 진행해 관객 접근성을 높인다. 공연은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