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뒷짐 진 정부에 발목 잡힌 리걸 테크

이덕연 성장기업부 기자






대한변호사협회·서울지방변호사회 등 직역 단체가 리걸테크(법률 기술) 플랫폼 ‘로톡’ 운영사 로앤컴퍼니와 갈등을 빚기 시작한 것은 로톡 서비스 개시 이듬해인 2015년 3월부터다. 이후 이들 단체가 소속 변호사 징계, 로앤컴퍼니 고발 등의 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할 때마다 헌법 기관으로부터 일관되게 나온 결론이 있다. ‘로앤컴퍼니 무혐의’. 법적 면죄부를 받았지만 장기간 직역 단체와 분쟁을 겪으며 로앤컴퍼니는 고사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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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변협과 서울변회가 변호사들의 영업 활동을 제한했다’는 판단을 내리며 시정 명령과 과징금 10억 원을 각각 부과했다. 하지만 검찰에 고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행정처분을 내릴 정도로 문제가 있지만 검찰 고발은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이후 로앤컴퍼니가 경영 위기를 겪자 중소벤처기업부는 변협과 서울변회가 로톡의 사업을 방해해 피해를 입혔다고 보고 공정위에 의무 고발 요청 절차를 개시했다. 의무 고발 요청 제도에 따라 고발 요청을 받으면 공정위는 반드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공권력을 바탕으로 자유시장경제 구현에 앞장서야 할 공정위 대신 중기부가 칼을 빼든 형국이다.

법무부도 소극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로톡을 이용한 변호사에 대한 변협 징계가 적절했는지 판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지난해 10월 변협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로톡 가입 변호사 9명은 두 달 뒤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했다. 법무부 징계위원회는 원칙적으로 변협 징계위원회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판단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결론을 3개월 더 미뤘다. 이 같은 결론 유보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이에 대한 법무부 측의 설명은 ‘사안의 중대성 등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모험 자본주의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는 직역 단체와 분쟁이 생길 수 있는 사업은 투자를 극도로 꺼린다. 설령 사업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라도 직역 단체가 문제 제기를 하는 순간 사업이 휘청일 수 있어서다. 한때 중기부가 ‘예비 유니콘’으로 선정할 정도로 기술력·성장성을 인정받았던 로앤컴퍼니는 올 초 직원 절반 이상을 내보내는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자유와 혁신·창의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 철학이 일부 정부 기관에는 유명무실한 듯해 안타깝다.


이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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