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의 경영 철학은 크게 나눠 ‘인재 경영’과 ‘기술 중시’로 볼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인재 육성은 구인회 창업회장 때부터 LG가 지켜온 경영의 핵심 철학으로 통한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경영자로서 인사 원칙에 대해 “첫째는 재직 중 얼마나 많은 이익을 냈냐, 업적이 어느 정도이냐이지만 본인의 후계자를 제대로 길러냈느냐도 최고경영자(CEO)를 평가하는 주요 원칙”이라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인재 중시 DNA는 대를 이어 유전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2018년 이후 LG그룹이 영입한 외부 인사만 100명에 이른다. 그가 2018년 6월 취임한 직후 가장 먼저 참석한 외부 공식 행사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이공계 석박사 인재 유치 행사였다. 이렇게 영입된 인재들은 LG의 재도약을 이끌었다. 2019년 글로벌 화학 기업인 3M에서 LG화학의 CEO로 영입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 부회장은 취임 이후 배터리 사업을 분사하고 LG에너지솔루션을 출범하는 등 미래 사업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물적 분할, 기업공개(IPO) 과정을 두고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상장 시기가 6개월만 더 지연됐어도 LG그룹 전체가 휘청일 뻔했다는 게 재계의 한결같은 평가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일을 한 번 맡기면 강력한 신뢰를 주는 LG의 문화가 ‘월급쟁이 사장’도 결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홍범식 ㈜LG 경영전략부문장(사장)도 대표적인 외부 영입 인사다. 컨설팅사인 베인앤컴퍼니코리아 출신으로 세계 3위 자동차 부품 업체인 마그나인터내셔널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굵직굵직한 투자가 모두 그의 손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 분야에서는 LG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사고를 최대한 확장하라는 게 구 회장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개 부문 10개 팀으로 구성된 ㈜LG 지주사에서 외부 투자를 관장하는 경영전략부문과 미래투자팀(조케빈 전무)의 수장은 모두 외부인 출신이다.
2020년에는 세계 10대 인공지능(AI) 석학으로 꼽히는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교수가 LG에 합류했고 2021년에는 미국 백악관에서 사물인터넷 부문을 연구하던 이석우 전무가 LG전자 북미이노베이션센터장에 임명됐다.
매년 젊은 임원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LG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LG 관계자는 “최근 인사의 키워드는 ‘고객 가치’와 ‘미래 준비’”라며 “이 중에서도 미래 준비를 위해 젊고 잠재력 있는 인재들을 과감히 기용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지난해 인사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지난해 LG그룹 인사에서는 총 114명의 신임 상무가 발탁됐는데 이 중 1970년(53세) 이후 출생이 92%를 차지했다. 초임 임원인 상무 층을 두텁게 하면 중장기적으로 CEO 풀이 늘어나 조직 내부에서 건강한 경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밝힌 후계자 육성의 중요성과도 맥락이 이어지는 부분이다.
여성 CEO를 배출하고 있는 것도 LG만의 장점이다. 대다수 국내 기업들이 투자나 경영 전략 측면에서 도전을 요구하면서도 인사에서는 유독 보수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과 정반대의 움직임이다. 이정애 LG생활건강 사장과 박애리 지투알 사장이 국내 4대 그룹 최초 여성 CEO 타이틀을 움켜쥔 주인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