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북스&]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메세지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류이치 사카모토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지난 2009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연합뉴스지난 2009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연합뉴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차분한 피아노 선율로 전 세계 사람들을 위로한 그의 말대로 그는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음악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를 사랑했던 팬들에게 그의 부재는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신간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그런 독자들을 겨냥해 음악이 아닌 글로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전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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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2022년 7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일본의 문예지 ‘신초’에 사카모토가 연재한 칼럼을 엮었다. 특별 부록으로 사카모토가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 글과 유족이 전한 일기 일부가 수록됐다.

생전 마지막에 쓴 글들인 만큼 책도 2020년 그가 암이 재발해 간, 림프 등으로 전이됐다는 소식을 들은 데서 출발한다. 그는 치료를 받아도 5년 이상 살 확률이 50%라는 진단을 받았다. 20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나온 그는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읊조렸다. 이는 영화 ‘마지막 사랑’에 나온 대사다. 인생이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무한한 일은 세상에 없다. 암의 재발과 대수술을 거친 사카모토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을 터다. 이같은 상황에서 그는 음악에 대한 애정, 의지를 키웠다. 암과 함께 살면서 음악을 더 만들겠다고 대중에게 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책의 시작은 암 진단에서 시작됐지만 중간중간 사카모토의 가치관, 철학을 엿볼 수 있는 활동들이 그의 말로 자세하게 풀어 묘사됐다. ‘async’ 앨범에 활용한 ‘쓰나미 피아노’의 소리를 설명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책에 따르면 그는 쓰나미로 흙탕물을 뒤집어쓴 피아노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미야자키 현까지 직접 찾아갔다. 쓰나미로 다른 악기들이 산산이 부서진 것과 달리 이 피아노는 튼튼하게 남아 있었다. 단 소금물에 젖어 아무리 수리해도 건반의 일부는 이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러나 쓰나미로 침수된 건반들이 내는 소리가 오히려 사카모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악기가 파괴되고 난 후에야 오히려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같은 새로운 시도는 그의 뉴욕 자택 정원에 피아노를 수 년간 방치해 놓은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수차례 비바람을 맞아 색도 벗겨진 피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 나무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그는 이 피아노를 보며 인간이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책을 읽는 내내 죽음을 앞둔 그가 그 누구보다 더 음악적인 활동을 활발히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병실에서도 지진 피해 지역의 어린이들로 구성된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를 지도하고 다른 음악가와 협업을 위해 회의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어떤 생각, 어떤 마음으로 활동했는지 책을 통해 들어볼 수 있다. 지금까지도 그의 음악을 듣고 그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에게 책은 다시 그를 만날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2만 원.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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