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 업계는 정부가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시행에 이어 계좌 갈아타기 규제까지 완화할 경우 퇴직연금 시장의 판도가 한층 크게 흔들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손실 부담 없이 자유롭게 계좌를 이동하게 되면 수익률은 높고 수수료는 저렴한 증권 업계가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올 4분기 ‘퇴직연금 실물 이전 방안’ 초안을 발표한다. 가입자가 해지 과정에서 손해를 보지 않도록 상품은 그대로 둔 채 퇴직연금 운용 사업자만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책의 핵심이다. 디폴트옵션 전면 도입을 계기로 기존 가입 상품에 만족하지 못하던 금융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겠다는 의도다.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예탁결제원 등 총 16개 기관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해당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시행 당일에 맞춰 방안을 공표하지는 못할 것 같다”면서도 “고용부와 원활히 소통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세부 내용까지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이와 함께 수수료를 상품 운용 성과에 연동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서비스 질이나 운용 성과와 무관하게 적립금 규모만을 기준으로 손쉽게 수수료 장사를 하는 관행을 깨겠다는 게 정책 취지다. 금감원도 퇴직연금을 맡은 금융사가 수익률이 낮은 부적합 상품을 스스로 선별·정리하게끔 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로 했다.
금융 당국은 또 투자 상품의 다양화를 촉진하기 위해 퇴직연금 적립금으로 국채형 익일물 환매조건부채권(RP)과 머니마켓펀드(MMF) 등에 100%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감독 규정 개정안도 3분기 안에 시행하기로 했다.
증권사들은 이 같이 퇴직연금 운용 자율성을 대폭 높이는 방향의 정부 정책이 모두 실행될 경우 금융투자 업계의 시장점유율이 비약적으로 늘 수 있다고 예상했다. 경쟁 체제 전환을 통해 저조한 수익률, 시장 내 경쟁 저하, 신규 진입·퇴출 부진, 적립금 중심의 양적 경쟁 등 현 퇴직연금 시장의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봤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업과 개인에게 안정성을 담보하면서 은행 계좌보다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특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면 점유율을 늘릴 여지는 충분하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