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 주요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국내 최초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14일 김성훈(사진) 한화자산운용 ETF사업본부장(상무)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최근 일본 소부장 ETF 상장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본부장은 “독일의 주요 지수 사업자인 솔랙티브(Solactive) 사와 기초지수를 개발했고 한국거래소와 현재 상장 작업을 두고 협의하고 있다”며 “이르면 오는 9월 상장할 전망”이라고 소개했다.
김 본부장 구상대로 한화운용이 해당 상품을 선보이면 이는 한국 시장에 상장하는 최초의 일본 관련 테마형 ETF가 된다. 애초에 한국 ETF 시장에는 장기간 경제 성장이 둔화한 일본 관련 상품 자체가 많지 않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일본엔선물레버리지’ ‘TIGER 일본엔선물인버스’ ‘TIGER 일본엔선물인버스2X’ 등은 2021년 초 유동 주식 수가 부족해 상장 폐지되기도 했다. 현재 남아 있는 ETF는 지수형·엔 선물·부동산투자신탁(리츠) 관련 펀드 8개가 전부다. 자산운용사가 일본의 특정 산업·기업을 선별해 직접 기초자산을 구성한 ETF는 한 번도 없다. 김 본부장도 “계획대로 상장하면 일본의 특정 테마나 산업군에 집중하는 첫번째 ETF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ETF는 일본 내 반도체 소부장 업체 20곳에 집중 투자할 예정이다. △글로벌 1위 실리콘웨이퍼 제조업체 신에츠화학 △세계 3위 반도체 장비 업체 도쿄일렉트론 △극자외선(EUV) 마스크 독점 생산 업체 호야 등이 상위 편입 종목이다. 최근 일본 정부가 사실상 국유화를 선언한 포토레지스트 세계 1위 업체 JSR 등도 포트폴리오에 포함한다.
김 본부장은 “소부장 업체들만 선별해 투자한다는 점에서 해외에 이미 상장된 다른 일본 반도체 관련 ETF와도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한화운용이 일본 소부장 상품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반도체 업황 반등 가능성과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들었다. 미중 갈등 국면 속에서 일본 소부장 업체들이 가치사슬의 주축을 담당하며 반사 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실제로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은 지난 5월 일본에 D램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본부장은 “일본의 경우 ‘칩4(미국·한국·대만·일본)’ 동맹 가운데 중국의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자유롭다”며 “특히 남중국해 분쟁 탓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너무 큰 대만을 대신해 일본이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일본 소부장 ETF가 유망한 까닭으로 엔화 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왔다는 점도 들었다. 일본 소부장 기업들 대다수가 수출 기업인 만큼 엔저 현상은 호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의 말대로 최근 엔달러 환율은 24년 만에 달러당 140엔까지 치솟았다. JP모건·노무라증권 등 글로벌 증권사들은 엔달러 환율이 최대 155엔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 본부장은 “엔달러 환율은 통상 110대를 유지해 왔기에 120대까지는 엔저 수혜 구간”이라며 “일본이 비록 메모리반도체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에서는 한국·대만에 주도권을 빼앗겼지만 소부장 영역에서는 여전히 대체가 어려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본부장은 일본에서 소부장 외에 ETF 개발용으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업종으로 종합상사를 꼽았다. 일본 5대 종합상사들이 자원 개발 사업으로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린 점을 높이 본 셈이다. 김 본부장은 최근 이들이 친환경·광물 등 유망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나갈 것으로 점쳤다. 김 본부장은 “국내 포스코처럼 일본 종합상사도 신사업 진출을 통해 체질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호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