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가요

[허지영의 케잇슈] 팬덤은 여전히 '불가촉천민'…케이팝, 윤리적 경종 필요할 때


하이브가 소속 아이돌 그룹 앤팀(&TEAM)의 팬 사인회에 참석한 팬들을 대상으로 과도한 몸수색을 했다는 논란을 받았다. 성희롱 수준의 보안 검사에 팬들은 '불가촉천민', '팬은 돈 쓰고 을이다'라는 불만을 토로했다. 최근 케이팝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팬덤이 겪는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TEAM 'First Howling WE' 콘셉트 포스터 / 사진=하이브 재팬&TEAM 'First Howling WE' 콘셉트 포스터 / 사진=하이브 재팬






◇아이돌 팬 사인회에서 불거진 성희롱 논란

논란이 시작된 건 지난 8일, 앤팀의 국내 대면 팬 사인회가 끝난 이후였다. 앤팀의 팬 트위터 계정에 글이 올라왔다. "(팬 매니저가) 가슴 좀 만진다면서 만지다가 '애플워치냐' 물으며 날 끌고 갔다. 작은 공간으로 날 데리고 가더니 옷을 올리라고 했다. 밀어붙여서 어쩔 수 없이 올렸는데 어떤 분이 문 열고 들어오셔서 내가 속옷 검사당하는 걸 봤다. 너무 수치스럽고 인권 바닥 된 기분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비슷한 후기가 속출했다. 서울경제스타 취재 결과, 일부 과장된 진술이 있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보안 요원이 보안을 명목으로 팬의 신체에 손을 접촉하는 방식으로 검사한 정황은 사실이었다. 당시 팬 사인회에 참석했던 팬 A 씨는 서울경제스타에 "가슴과 골반, 허리를 더듬어 전자 기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 후 보내줬다"고 증언했다.

◇소속사, 논란 의식해 사과... '녹음 금지'는 보편적 규칙

앤팀의 소속사 하이브는 팬 사인회 다음날인 9일 위버스샵을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 하이브는 "전자장비를 몸에 숨겨 반입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여 이를 확인하는 보안 바디체크가 여성 보안요원에 의해 진행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행사에 참석하신 팬 여러분에게 불쾌감을 드리게 됐다"며 "아무리 보안상의 이유라고 해도, 그것이 팬분들을 불편하게 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현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소속사가 몸수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실 하이브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소속사는 팬 사인회에서 개인 녹음을 금지한다. 이는 아이돌의 이미지 리스크와 관련돼 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녹음을 막는 이유는 팬들이 녹음본을 임의로 재편집해서 올릴 경우, 대화의 의도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 나올 수도 있고, 악의적으로 가공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이브 신사옥 / 사진=하이브하이브 신사옥 / 사진=하이브


◇ 실제 규칙 위반 발생하지만... 업계 "과도한 처사"



실제로 팬들이 녹음을 위해 신체에 전자 기기를 몰래 반입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현재 모 아이돌을 담당하는 팬 매니저 B 씨는 "팬 사인회에서 애플 워치의 스트랩을 제거하고 본체만 신체 부위에 소지해서 올라오는 팬이 많다"며 "프라이빗한 신체 부위에 넣어 오면, 넣는 걸 본 게 아닌 이상 검열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현장의 팬 A 씨도 "그날 애플 워치를 신체에 반입했다가 보안 요원에게 걸린 사람이 있었다. 두 분 정도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의 요점은 과도한 몸수색이다. 일부 팬이 소속사의 규칙을 어겼다고 해서 성희롱 수준의 몸수색을 한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다. 팬의 대화 녹음이 아이돌에게 끼칠 리스크를 예방한다는 명분도, 민감한 부위를 '주무르는' 수준까지 허락하기엔 약하다는 의견이다.

팬 매니저 B 씨는 "신체에 전자 기기를 소지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체크도 하지만 민감한 부위를 만지거나 하는 식으로 검사하지 않는다. (하이브는) 사전에 팬들에게 동의를 구한 것도 아니고,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우려했다.

또 다른 팬 매니저 C 씨는 "전자 기기 소지가 의심된다 해도 몸수색을 할 순 없다. 심증이 보이면 대화로 회유하여 팬이 전자 기기를 직접 반납하게 하는 방법을 쓴다. 보통은 몸수색 그런 것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팬덤은 여전히 '불가촉천민'이고 '슈퍼 을'

앤팀의 팬 사인회 후기가 기사화되자 여론은 기본적으로 분개했지만, 일부 누리꾼은 "빠순이", "그 돈으로 효도해라", "왜 거기서 신고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냐" 등 팬덤을 탓하는 말, 노골적인 혐오의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에 앤팀의 팬들은 소속사의 반쪽짜리 사과와, 혐오가 담긴 댓글 등으로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사실 이번 일은 하이브의 제제가 과했기 때문에 논란이 된 것일 뿐, 기본적으로 팬 이벤트에서 팬덤이 감내해야 하는 불편과 수고는 케이팝 팬덤 시스템 안에서 답습된다. 케이팝의 위상이 날로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팬덤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일례로 지난 2016년에는 팬덤 측에서 보안의 범위를 넘어선 과한 폭언·폭행을 일삼는 보안 업체에 대해 '시큐리티 갑질' 사례를 모으는 움직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2023년이 된 현재도 여전히 일부 팬덤은 스스로를 '불가촉천민'이라 칭하며 자조하는 분위기다.

팬덤 연구를 해온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팬덤은 소비자로 위치 지어진 역사를 갖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을의 위치로 소속사의 갑질을 견뎌야 하는 애정 노동자의 감정 노동을 지속해야만 한다" 며 "사실 아이돌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팬덤의 인권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획사에서 지속적으로 인지해야 하는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짚었다.

하이브의 '위버스콘 페스티벌' 현장 사진 / 사진=하이브하이브의 '위버스콘 페스티벌' 현장 사진 / 사진=하이브


◇케이팝 산업, 윤리적 경종 필요할 때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기 전인 2000년대에는 현장에서 부당한 일이 벌어져도 세상에 알려지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공적인 행사인 팬 사인회에서 겪은 아주 사적인 경험을 SNS에 전시할 수 있고, 이는 금새 사적 경험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기획사가 녹음을 금지하는 이유다. 단편적 경험이 악의적으로 재편집되어 전시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아티스트에 가기 때문이다. 이에 기획사는 노파심에 과도한 통제를 하고, 팬덤은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장 교수는 "팬덤은 소비자로 위치지어진 역사를 갖지만 동시에 미디어 환경 변화로 인한 다양한 형태의 생산자적 역할을 함께 한다"며 "이 영역에 대해서도 팬덤과 기획사가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케이팝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기획사와 아이돌, 팬덤의 삼각형이 올바르게 구축되어야 한다. 아울러 케이팝 산업 아래 있는 보안·공연 산업군도 케이팝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케이팝이 주류 팝 문화로 성장하고 있는 지금, '팬을 밀쳤다', '팬을 때렸다' 등 직접적인 폭력 사태가 왕왕 발생하는 건 아티스트에도, 기획사에도, 팬덤에도 좋지 않은 일이다. 케이팝 산업에 기본적인 윤리적 경종이 필요할 때다.


허지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