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제도를 폐지했더라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효과를 위해 사형을 선택하는 게 정당화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형제도가 이미 ‘유명무실’해진 만큼 이를 대체·보강할 법률 개정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13일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모(28)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9년 금을 거래하러 온 40대를 살해하는 등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던 이씨는 2021년 12월 21일 공주교도소 수용 거실 안에서 같은 방 40대 수용자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은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특히 선고 사유 가운데 하나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가석방이 되는 무기징역과 달리 사형은 사면이나 감형이 없는 한 계속해서 교정시설에 수용돼 있어야 해 사실상 절대적 종신형으로 기능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꼽았다. 반면 대법원은 ‘절대적 종신형은 형법, 형사소송법, 형집행법상 형의 종류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원심이 사형 선고의 근거로 든 내용은 타당하다고 보고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절대적 종신형에 대해 명확한 판단은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형은 절대적 종신형에 대한 법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란 일종의 대체제로 쓰여왔다. 연쇄살인범 권재찬이나 춘천 연인살해사건, 모친·아들 장롱유기 사건 등에서 사형이 선고된 게 대표적이다. 하급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도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도 절대적 종신형으로 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는 형법상 유기·무기징역에 대한 가석방제가 지닌 ‘역차별적’ 요소 때문이다. 형법 제72조에는 ‘징역이나 금고의 집행 중에 있는 사람이 행상(行狀)이 양호해 뉘우침이 뚜렷한 때에는 무기형은 20년, 유기형은 형기의 3분의 1이 지난 후 행정처분으로 가석방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유기형의 경우 가석방 기간을 남은 형기로 하되, 기간은 10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즉 형기가 20년 지난 무기수는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으나 40형 형을 선고받은 유기수는 30년까지 가석방의 기회가 없다. 오히려 무기수가 30년 이상 형을 선고받은 유기수보다 죄질은 좋지 않으나, 가석방이 될 가능성은 한층 높은 셈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 사형 형집행 시효가 폐지돼 사형 선고는 곧 의미없는 무기징역”이라며 “유기징역형은 잔여형기가 10년 이상 남으면 가석방이 되지 않지만, 무기징역의 경우 20년 형기를 채우면 (가석방이) 가능하다는 부분부터 고쳐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심리 중이다. 대법원의 판단에 이어 헌재까지 사형제에 대해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 자연스레 사형을 대체할 절대적 종신형 등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