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정부 '홍수지도' 2년 전 공개했지만…지자체 10곳중 3곳 미활용

◆구멍 난 재해관리 시스템

미호천 주변 홍수위험지도 범위를 넓혔을 때 모습. 자주색으로 표시된 곳은 궁평 2지하차도에서 직선거리로 800m 떨어진 궁평 1지하차도로 침수심이 5m 이상으로 표시돼 있다. 홍수위험지도 정보시스템 캡처미호천 주변 홍수위험지도 범위를 넓혔을 때 모습. 자주색으로 표시된 곳은 궁평 2지하차도에서 직선거리로 800m 떨어진 궁평 1지하차도로 침수심이 5m 이상으로 표시돼 있다. 홍수위험지도 정보시스템 캡처




정부가 2년 전부터 지방자치단체와 일반인들이 홍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홍수위험지도’를 공개했지만 이번 집중호우 때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4명의 사망자가 나온 충북 궁평2지하차도가 5m 이상 침수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는데도 지자체가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극한상황 가정 침수 정도 보여줘
미호천 주변 주택가까지 범람 경고
궁평2지하차도 5m 이상 침수 예측


18일 서울경제신문이 환경부의 홍수위험지도 정보시스템을 조회한 결과 미호천(2022년 7월부터 미호강으로 명칭 변경) 범람으로 홍수가 발생했을 경우 미호천 서쪽 방향으로 오송역 주변 아파트 단지 인근까지 침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침수 면적(50.99㎢)의 절반에 해당하는 28.18㎢가 2~5m가량 물에 잠겼다. 지도가 궁평 2지하차도(2019년 11월 완공)가 조성되기 전인 2015년 제작된 점을 고려하면 2지하차도는 인접한 1지하차도처럼 5m 이상 침수되는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홍수위험지도는 하천 제방의 설계 빈도를 초과하는 홍수가 발생해 제방 붕괴, 제방 월류 등 극한의 상황이 발생한다는 가정 아래 하천 주변 지역의 침수 범위와 깊이를 나타낸 지도다. 설계 빈도란 하천 제방을 지을 때 기준으로 삼는 강수량으로 100년 빈도일 경우 100년 만에 한 번 올 만한 최악의 강수량에 대비한다는 뜻이다. 통상 국가하천은 100년 빈도 이상, 지방하천은 50년 빈도 이상이 적용된다. 이번 ‘극한 호우(1시간 50㎜·3시간 90㎜ 동시 충족하는 비)’ 사태처럼 하천 물이 제방을 넘어 범람하거나 제방이 터질 만큼 강력한 비가 왔을 경우 어디까지 얼만큼 침수되는지 파악할 수 있다.



환경부는 하천명을 검색하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홍수 발생 시 주변 침수 위험 범위와 깊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홍수위험지도를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있다. 2004년부터 부분 제작을 시작해 종이 지도로 배포됐다가 지자체가 신속하게 홍수에 대처하고 위험 지역에 거주하는 일반인도 정보를 파악하도록 2021년 3월부터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국가하천·지방하천 지도가 완성됐고 현재는 지난해 발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침수를 계기로 도시침수지도가 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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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지류인 미호천은 연장 길이 39.13㎞의 국가하천으로서 이번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지하 차도와 직선거리로 500m 떨어진 미호천 주변 제방이 터지면서 불어난 물이 지하 차도로 밀려들었다.

홍수위험지도로 미호천 범람에 따른 침수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이번 사태에서 활용되지 못했다. 금강홍수통제소가 15일 오전 4시 10분 미호천교 주변에 홍수경보를 발령하고 국무총리실·행정안전부·충북도·청주시·흥덕구 등 기관에 통보문을 보냈지만 4시간여 동안 지하 차도 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지하 차도가 침수됐고 차에 타고 있던 14명이 사망했다.

"지자체, 제대로 활용 못해"
수백억 들여 온라인 게시했지만
방재대책 쓰이는지 파악 어려워
"정부, 사용 적극 독려해야" 지적


정부는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홍수위험지도를 제작했지만 지자체가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주요 하천을 끼고 있는 지자체 90여 곳에 홍수위험지도를 토대로 방재 대책 수립, 홍수 대피 경로 지정 등 계획을 세우라고 안내하지만 의무사항은 아니기 때문에 반영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자체를 대상으로 매년 홍수위험지도를 실제 활용하는지 실태 조사를 하지만 70% 정도만 활용한다고 답변한다”며 “활용하더라도 어떻게 활용하는지, 제대로 반영이 됐는지까지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수백억 원을 들인 홍수위험지도가 실제 자연 재난 대응에 쓰일 수 있도록 정부가 지자체를 적극 독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 세입세출예산 각목 명세서에 따르면 해마다 홍수위험지도 제작·관리에 14억~17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등 20년간 지도 사업에 200억 원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는 사망 44명, 실종 6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경북 22명, 충북 17명, 충남 4명, 세종 1명이다. 실종자는 경북 5명, 부산 1명이다. 주택 274채가 침수되고 46채가 파손됐으며 축구장 약 4만 3000개에 해당하는 3만 1064.7㏊에서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19일 오전부터 장맛비가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가 주말부터는 전국에 강하고 많은 비가 예상되면서 당분간 호우 피해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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