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낮달

이규리





무슨 단체 모임같이 수런대는 곳에서



맨 구석 자리에 앉아 보일 듯 말 듯

몇 번 웃고 마는 사람처럼

예식장에서 주례가 벗어놓고 간

흰 면장갑이거나

그 포개진 면에 잠시 머무는

미지근한 체온 같다 할까

또는, 옷장 속

슬쩍 일별만 할 뿐 입지 않는 옷들이나



그 옷 사이 근근이 남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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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나프탈렌 냄새라 할까

어떻든

단체 사진 속 맨 뒷줄에서

얼굴 다 가려진 채

정수리와 어깨로만 파악되는

긴가민가한 이름이어도 좋겠다

있는가 하면 없고, 없는가 하면 있는

오래된 흰죽 같은,

보일 듯 말 듯, 미지근하고, 근근하고, 희미하고, 긴가민가하고, 있는가 하면 없고, 없는가 하면 있는 것들이 세상의 주연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주목을 끌고, 화끈해 보이고, 딱 부러지게 말하던 이들은 대개 스포트라이트가 꺼지면 보이지 않는다. 낮달 같은 이들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어둠이 올 때 비로소 빛을 낸다. 보이지 않는 꿋꿋한 뒷면을 지니고 있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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