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역사 속 하루]실패로 끝난 발키리 작전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1944년 7월 20일





2차 대전 이후 독일은 전범 국가가 됐다. 비난은 뉘른베르크 재판에 기소된 주요 전범들에 한정되지 않았다. 평범한 독일인들까지 아돌프 히틀러의 협력자로 간주됐다. 그 때문에 모든 독일 국민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밝히는 소명서를 연합국 군정 당국에 제출해야 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독일인은 나치 체제에 저항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루머가 생겨났다. 사실은 이와 달랐다. 독일인 중에는 나치에 저항하거나 국법을 어기고 유대인 구출에 가담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남녀노소가 히틀러를 열렬히 환영하는 기록영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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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에 참여한 독일인 중에는 군 장교들도 있었다. 이들은 체제 내부에서 총통을 암살함으로써 전쟁을 끝내고자 했다. 이 일을 독일인들은 ‘7월 20일 사건’으로 가르친다. 이 사건의 중심에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이 있었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했던 실제 인물이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다. 명문가 출신의 이 젊은 대령은 뜻을 같이한 동지들과 교신하면서 볼프스샨체(Wolfsschanze) 벙커 회의실에 폭탄 가방을 설치했다. 폭발 직전 자리를 뜬 대령은 성공을 확신하고 작전 개시를 요청했지만 불행하게도 히틀러는 가벼운 부상만 입었다.

히틀러가 라디오방송 연설을 통해 격분한 어조로 생존을 알리면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됐다. 처형된 200명 이상의 지사 중에는 19명의 장성이 포함됐다. 이 외에도 2명의 대사와 7명의 외교관 등 다양한 부처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반역자로 매도됐다. 이들이 독일의 명예를 살린 애국자로 복권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조건 없이 법을 준수하는 것이 애국일까. 아니면 애국은 법조문 너머의 세계에 있는 것일까. 오늘날 독일은 반란의 중추였던 베를린 후방군 사령부를 독일저항기념관으로 만들어 국가의 명령이라도 인도의 원칙과 양심에 어긋날 경우에는 거부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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