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中 후커우 제도





2014년 여름 중국 베이징에서 대학생 등 80여 명에게 불법 신분증을 만들어준 일당이 공안에 붙잡혔다. 베이징의 한 정보기술(IT) 업체 사장 등은 인터넷을 통해 베이징 후커우(戶口·호적)를 원하는 외지인을 모은 뒤 자신의 회사에 취업한 것처럼 가짜 서류를 꾸며 후커우를 불법으로 발급해줬다. 베이징 후커우가 연금 지급이나 대학 입학 등에서 혜택이 크지만 출생지·직장·학교 등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쉽게 발급받기 어려운 점을 노린 것이다.



중국판 호적으로 불리는 후커우는 소유자의 신분과 거주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든 증명서다. 중국 정부가 도시로의 인구 이동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국민 통제 시스템이다. 후커우는 1951년 도시 지역에서 처음 도입됐으며 1958년 제정된 ‘후커우 등기 조례’로 골격을 갖추게 됐다. 후커우가 없으면 도시에서 주택을 매입할 수 없으며 의료·교육 등 각종 사회보장 혜택에서 배제된다. 태어날 때부터 도시인과 농민을 원천적으로 차별해 ‘현대판 신분제’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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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커우는 시진핑 정부 등장 이후인 2014년 ‘국가 신형 도시화 계획’ 공개로 분기점을 맞았다. 당시 정부는 고정된 신분으로 여겨졌던 후커우를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농업·비농업 구분을 없앴을 뿐 도시와 농촌이라는 이원 구조를 건드리지 않아 ‘무늬만 개혁’에 머물렀다.

중국 정부가 경기 둔화와 인구 감소 등에 맞서 후커우에 대한 수술에 나섰다. 중국 저장성 정부 등은 최근 관할 지역에 농민공의 후커우 신규 등록을 허용하고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는 등 후커우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경기 침체가 심각해지자 저임금 노동자를 다시 도시로 끌어들여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도다. 국가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로막고 직업 선택의 자유마저 제한한다면 경제 발전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헌법 14조와 15조는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고 창의와 혁신을 북돋워야 국민의 삶과 국가 경제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정상범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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