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월 504만원 버는데 최저임금 어떻게 주나" 워킹맘들 쓴소리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고용부, 시범사업 공청회

내국인보다는 시급 30% 낮지만

중산층 가정이 이용하기엔 부담

멘토들조차 "실효성 없다" 지적

돌봄 전문성·신뢰성 담보도 의문

"고령화 대비 외국인 활용" 주장도

토론자들이 31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서울에서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욱 기자토론자들이 31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서울에서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욱 기자




정부가 하반기 중 서울 맞벌이 부부 등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벌일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의 관건은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에 양질의 가사 및 육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느냐다. 고용부는 일단 시범사업을 먼저 진행한 뒤 향후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방침이지만 최저임금 수준으로 급여를 지급해서는 실효성 없는 정책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같은 한민족인 중국 동포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마당에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 도우미에게 월 200만 원 안팎의 비용을 지불할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가 31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서울에서 개최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은 무작정 도입할 게 아니라 현실성 있는 대안인지 검증부터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저출산 기조 심화와 황혼 육아 증가에 따른 맞벌이 부부의 육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고용부는 일단 서울 자치구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문제점을 보완해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날 발표대로라면 시장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장 큰 쟁점은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임금 수준이다. 고용부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차별 금지 협약에 따라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인 9620원을 적용하면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할 때 주휴수당을 포함해 월 약 201만 원을 받게 된다.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숙소는 고용부가 인증한 서비스 제공 업체가 마련해야 하며 숙소비는 가사근로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서울시는 시범사업 기간에 예산 1억 5000만 원을 들여 숙소·교통·통역비 등 외국인 가사근로자 초기 정착에 필요한 비용을 일부 지원할 계획이다. 다만 월급 200만 원은 내국인 가사근로자에 비해 30%가량 낮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게다가 외국인이라는 심리적 장벽과 신뢰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선뜻 이들을 가사도우미로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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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초미 워킹맘앤드대디 현장멘토단원은 “우리나라 4인 가족의 평균 월 소득이 504만 원 수준인데 200만 원을 부담하고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얼마나 이용할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라며 “특히 육아도우미는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지 못한 육아 경험을 얻기 위해 이용하는 건데 외국인 가사근로자가 전문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위원장도 “월 200만 원을 지급한다고 해도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정주 여건이 체계적으로 보장되지 않고서는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며 “결국 정부가 제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가사 서비스 전용 비자를 도입하고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으로 가지 않을까 본다”고 밝혔다.

가사도우미와 육아도우미의 역할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고용부는 가사노동자법에 따라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청소·빨래·요리 등 가사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서도 필요에 따라 육아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한국을 찾는 가사근로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출신 국가는 필리핀·싱가포르 등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이다. 사실상 이들이 ‘영어 과외 교사’ 역할까지 맡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보다 앞서 해외 가사근로자를 제도적으로 도입한 홍콩과 싱가포르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은 해당 국가의 가사도우미들이 원화 기준 100만 원을 넘게 받으면 수요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는 9일 서울시가 개최한 ‘외국인 가사 인력 도입 전문가 토론회’에서 “홍콩은 가사도우미의 상대임금이 1990년대 들어 30~40% 수준으로 줄면서 수요가 늘어났다”면서 “한국의 중산 소득층도 월 100만 원 정도에 머물러야 가사도우미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홍콩은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최저임금으로 월 4730홍콩달러(약 77만 원)를 책정했다. 25~54세 홍콩 기혼 여성 노동자 평균 임금의 30% 이하 수준이며 최저임금 적용도 받지 않는다. 홍콩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1990년 7만 335명에서 지난해 33만 8189명으로 4.6배 증가했다. 다만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전일제 근로만 가능하며 특정 시간에만 일하는 시간제 가사도우미는 내국인만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고령화 문제에 대비하려면 외국인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한국이 외국인 근로자를 도입한 지 30년을 넘어가면서 (이들의) 언어와 직무 숙련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고령화 문제가 새로운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며 “주요 선진국이 가사에서 간병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것처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한국은 외국인 근로자의 활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지성 기자·양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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