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원하는 속도는 아니더라도 고용시장과 인플레이션은 분명히 식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도 우려와 달리 재앙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월가 투자은행인 에버코어ISI의 크리슈나 구하(사진) 부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창간 기념 인터뷰에서 “지금부터 1~2년 후 미국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4.5% 쪽이 아니라 3.5% 또는 조금 더 낮아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내려간다는 것은 부동산부터 금융·테크 기업에 이르기까지 산업계의 금리 충격이 완화될 것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9월 미국 국채금리가 4% 이상으로 치솟을 당시 영국 연기금펀드가 파산 위기에 몰렸으며 올 3월에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보유 국채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을 내 지역은행 전반으로 위기감이 확산되기도 했다.
구하 부회장은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발(發) 비관론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봤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경제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우선 그는 지난 1년 4개월에 걸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행진이 7월 0.25%포인트 인상을 끝으로 마무리됐다고 봤다. 6월 연준이 제시한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인 5.6%에 못 미치지만 주요 지표의 흐름을 고려하면 추가 인상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구하 부회장의 진단이다. 그는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만 해도 시장 전망보다 더 둔화됐고 무엇보다 연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비스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눈에 띄었다”며 “제롬 파월 의장은 두 번째 인상이 필요한지 지켜보자는 입장인데 데이터가 지금대로라면 필요없다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하 부회장은 특히 현 시점에 미국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꼽히는 고용시장 수급 불균형이 개선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그는 “오늘 이 시점을 스냅샷으로 찍어 살펴보자”며 “고용시장은 여전히 너무 빡빡하지만 흐름을 살펴보면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거의 모든 고용지표가 점진적으로 완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비농업 부문 고용은 1월 51만 7000개나 급증했지만 6월에는 29만 9000개로 증가세가 완화됐다. 임금 상승세는 지난해 7월 전년 대비 5.4%였지만 올 6월에는 4.4%로 1%포인트가량 둔화됐다.
구하 부회장은 고용시장이 더 개선될 것이라는 데 대해 “확신할 수 있다”고 했다. 경제활동이 둔화하면서 인력 수요는 줄어드는 반면 노동력 공급은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구하 부회장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연준의 긴축 효과도 상당히 남아 있기 때문에 경제활동은 올 하반기를 넘어 내년까지 계속 줄어들 것”이라며 “반면 노동 공급 측면에서는 이민이 늘고 노동시장 참가율도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시점이다. 구하 부회장은 “연준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까지 고용시장이 균형을 찾으려면 이르면 6개월, 길게는 12개월은 더 걸릴 것”이라며 “연준이 그사이 고용 안정을 위해 금리를 더 올릴 수도 있지만 중요한 점은 연준이 납득할 만한 속도로 고용시장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전망대로라면 시간당 임금 상승률은 1년 안에 3.5%까지 내려오게 된다. 연준이 2% 인플레이션 목표에 부합한다고 밝힌 수준이다. 이 과정에서 경기 침체는 없을까. 구하 부회장은 “그렇다”고 했다. 그는 “지난 1년여 동안의 인플레이션 여정을 정리하자면 적어도 극심한 경기 둔화 없이 디스인플레이션이라는 주요 구간까지 도달했다는 점”이라며 “아직 충분한 수준까지 내려온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완전한 경기 침체 없이 물가와 고용을 개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긍적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가 원래부터 낙관론자였던 것은 아니다. 구하 부회장은 올 3월 SVB 사태가 터졌을 때만 해도 “내가 파월 의장이라면 일단 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상황을 지켜보는 편을 선택할 것”이라며 신중론을 편 바 있다. 그는 “당시 미국이 심각한 경기 침체는 아니더라도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였다”며 “이후로 경착륙을 피하는 형태의 결말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현재는 가벼운 경기 침체와 연착륙 가능성이 각각 거의 비슷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금리 인상의 효과가 부문별로 시차를 달리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구하 부회장은 이를 ‘부문별 순차 침체(sectoral rolling recession)’라고 표현했다. 그는 “팬데믹 충격이 경제의 각 부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른 시간대에 걸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경기 흐름도 부문별로 다르게 진행되는 것”이라며 “미국 경제를 주택 등 각 부문으로 보면 침체기를 겪지만 동시에 경제 전체는 침체되지 않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어떤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구하 부회장은 “주택 부문은 이미 가파른 하락세에서 벗어나 회복되고 있고 다음 순서인 제조업은 아직 바닥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라며 “하반기에는 소비자들의 초과 저축이 소진되고 금리 인상 효과가 본격화되면서 서비스 부문의 수요가 둔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시점에는 이미 제조업과 주택 부문이 회복세를 보일 확률이 높다”며 “이에 따라 유례 없는 긴축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체로 보면 연착륙 또는 가벼운 침체 중 하나가 될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도 긍정적 상황이라고 그는 평가했다. 구하 부회장은 “미국이 심각한 침체를 겪지 않고도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좋은 상황이라는 것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가 성장 동력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고무적”이라며 “미국의 연착륙이든 경미한 침체든 모두 세계 경제에는 나쁘지 않다”고 봤다.
이와 관련해 달러 역시 지난해의 강달러 충격이 재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구하 부회장의 전망이다. 그는 “미국 경제 성장이 플러스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빠르지는 않겠지만 달러가 약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며 “다만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이 고착되고 일본이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에 변화를 준다면 달러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구하 부회장은 “전반적인 경제 흐름은 우려하는 것보다 확실히 고무적이지만 지금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경기 사이클을 지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투자자들과 정책 당국자들은 어느 때보다 경제 상황과 전망 앞에서 겸손해야(humble) 하고 또 변화의 신호에 민첩하게(nimble) 대응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케임브리지대와 하버드 케네디스쿨을 나온 구하 부회장은 영국 경제 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워싱턴DC 지부장 등 언론인으로 활동하다 2010년부터 3년간 뉴욕연방준비은행 부총재를 지냈다. 이후 2013년 9월부터 월가 투자은행인 에버코어의 증권 부문 자회사 에버코어ISI 부회장으로 재직해왔다. 그는 에버코어ISI에서 중앙은행과 글로벌정책 전략팀도 이끌고 있다.
◇약력
△케임브리지대 △하버드 케네디스쿨 △FT 글로벌 경제 및 경제정책 편집위원 △세계경제포럼 글로벌자문위원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회원 △뉴욕연준 부총재 △현 에버코어ISI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