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 사건을 조사해 온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을 보직 해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고 조사결과를 민간에 이첩하지말라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무시한 채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해 지휘관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조사 내용을 경찰에 임의로 이첩했다는 이유다.
3일 국회 국방위원회 및 국방부에 따르면 해병대 수사단은 채 상병 사망 관련 조사 내용을 이종섭 국방장관에게 보고 후, 지난달 31일 언론 브리핑과 국회 설명을 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갑자기 취소했다.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달 30일 채수근 상병 사망사고 조사결과를 이종섭 장관에게 보고했다. 이에 이 장관은 조사결과를 경북경찰정에 이첩하고 국회 및 언론에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31일 이 장관은 국회와 언론에 설명하는 것을 미루고 민간으로의 이첩 또한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가 민간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관련자들의 혐의를 구체적으로 특정했다는 보고를 이 장관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시에도 해병대 수사단은 “군인 사망 사건은 군에서 직접 수사할 수 없도록 군사법원법이 개정됐다”며 지난 2일 조사 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해병대 수사단장 A대령은 지난 2일 채 상병 사망과 관련한 사건 기록 일체를 경찰에 넘겼다. 군인 사망 사건과 성범죄 등의 수사·재판은 처음부터 군이 아닌 민간 사법기관이 담당하도록 한다고 지난해 개정한 군사법원법에 따른 것이다.
이에 국방부 검찰단은 고 채 상병 수사 기록을 “사건 이첩 절차에서의 군기 위반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경찰에서 다시 회수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도 수사기록을 회수한 당일 A대령을 보직 해임했다.
군 관계자는 “군은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객관적 사실만 정리해 이첩해야 하는데, A대령이 국방부와 해병대 사령관의 지시를 어기고 자신이 임의로 판단한 자료를 제출했다”고 해임 사유를 설명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A대령이 상관 지시에 불응하고 무단 행동하는 등 ‘항명’한 것이라고 보고, 군기 위반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했다. 국방부는 “조만간 민간 다시 이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가 항명과 수사 책임자 보직 해임으로 번지자 일각에서는 군 지휘부가 책임을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건 이첩 문제 뿐 아니라, 고 채 상병 순직과 관련한 해병대 책임자들의 문책 범위를 두고 국방부와 해병대 수사단이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단의 보고 내용에는 사고 발생 경위와 함께 채 상병이 수색에 투입되는 과정에서 부대 지휘관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군 소식통 “법제상 구체적인 수사는 경찰에서 해야 하는데 해병대 수사단이 구체적인 혐의를 적시하는 등 월권을 했다는 게 지휘부의 판단”이라며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 주도적으로 장관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조사 결과에 대한 언론 브리핑 및 국회 보고 취소와 수사단장의 보직해임은 사실상 장관의 승인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군사법원법이 개정되면서 군인 관련 범죄라고 하더라도 사망 사고, 성폭력, 입대전 범죄 등 3대 사항은 군 사법기관이 아닌 일반 수사기관과 법원이 수사와 재판을 맡도록 규정하고 있다.
군 장병의 대민지원 활동 지침이 채수근 상병 사고 두 달 전 폐지된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군 당국에 따르면 국방부 훈령 제906호 ‘대민지원활동 업무 훈령’은 지난 5월 26일부로 폐지됐다. 다른 훈령과 상당 내용이 중복돼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명분이다. 국방부 훈령 제2532호 ‘국방 재난관리 훈령’과 내용이 중복돼 해당 훈령이 삭제되더라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국방부의 입장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대민지원에 대한 군 지휘부의 안일함을 옆볼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군 설명과 달리 국방 재난관리 훈령은 폐지된 훈령의 주요 내용을 온전히 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폐지된 대민지원활동 업무 훈령 제7조 ‘세부추진 지침’ 중 인력·장비 지원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지원활동’ 항목은 “대민지원을 요청한 자와 지원활동에 필요한 세부 절차 등을 사전협의해 내실 있는 대민지원 활동이 이뤄지도록 추진”, “사업추진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관련 부서와 부대·기관은 적극 협조”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반면 국방 재난관리 훈령은 “인력 및 장비 지원 등을 협력함에 있어 대등한 수준의 공공기관 및 지자체와 협력한다”고 적시했다. 현장에서는 기관간에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인데, 협력한다고만 명시해 사실상 지원의 적극성을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훈령 폐지에 따른 책임 소재를 묻기가 모호해졌다는 사실이다. 현재 국방부 훈령 제2745호 ‘국방 안전 훈령 별표7의 ‘특수한 임무 상황에서의 안전사고 주관 처리부서’ 규정에는 국방부 군수관리관을 주관부서로 명시했지만, 정작 그 근거는 ‘대민지원간 발생한 안전사고’로 적시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민지원활동 업무 훈령’은 지난 5월 26일부로 폐지해 현재는 근거 규정 없이 관련한 사항을 주관하는 부서가 존재하는 셈이다. 해당 훈령이 졸속으로 폐지됐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언론의 보도가 나가기 전까지도 국방부은 대민지원활동 업무 훈령을 폐지에 따른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는 사실 관계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군 전체를 지휘 감독하는 국방부의 대응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병대 측이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사고와 관련해 브리핑을 진행하기로 한 지난달 31일 오후 2시를 1시간 남겨 놓고 갑자기 취소했다.같은 날 오후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설명하기로 한 일정도 함께 취소했다. 야당 국방위 의원실 관계자는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이 직접 국회에 와 설명을 준비하던 중 연락을 받고 돌연 발길을 돌렸다”고 전했다.
다음날 8월 1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은 기자단과 국방부측, 해병대측 간에 설전이 오갔다. 이에 국방부는 “국방부 법부관리관실의 내부 법리 검토 결과 경찰의 정식 수사 전 언론 설명이 향후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일 국방부가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감찰, 보직해임 결정은 물론 경찰에 이첩한 문건을 다시 회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특히 해병대 차원이 아닌 국방부, 즉 국방부 법부관리관실의 판단을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승인하면서 매끄럽지 못한 대응을 사실상 지휘했다는 대목이다. 전례를 찾기 힘든 브리핑 무산과 국회 보고 취소, 사건을 조사하고 이첩한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보직 해임 과정은 사건을 은폐하려는 또 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국방부 장관이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국방부가 해병대 수사단장의 개인 일탈로 규정하며 항명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회적 논란이 커지는 만큼 해병대 수사단장이 판단한 과실치사 문제가 군 지휘부의 잘못으로 확산되지 않기 위한 사전 차단조치이자 그 자체가 수사 가이드라인을 표명한 것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한 예비역 군 검찰단 관계자는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에 어떻게 경찰의 정식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군 사망 사건은 조직의 특성상 빠른 속도로 진행해야 하는데 초기 조사를 해병대 수사단장을 쳐 냈다는 것은 다른 배경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도 “경찰이 정식 수사를 마치고 사건을 송치하면 압수수색을 포함해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 수 밖에 없다”며 “장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군이 가이드라인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고 꼬집었다.
유가족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는 국방부의 인식은 더욱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해병대 수사단은 국방부 장관 보고에 앞서 지난달 28일 초기 조사에 대해 고 채수근 상병 유족 측에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유족들은 해병대 조사결과를 신뢰하고, 이후 진행되는 경찰수사를 담담히 기다리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런 탓에 유가족 측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국방부 지휘부가 논란을 자초하며 사건의 진실 규명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을 훼손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가족 측도 4일 국방부 기자단에게 “유족들이 누구를 특정해서 처벌하는 것은 원치 않고 수근이도 함께한 전우들이 처벌되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여 제대로 된 대책이 세워져 확실히 실행이 되어 세월이 지나 지휘관이 바뀌어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주시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고 알려왔다.
그러면서 “아들 수근이 사건의 경찰이첩을 두고 벌어진 관련된 언론보도 내용을 접하고 당사자인 저희 유족들은 불편한 심정”이라며 “수근이의 희생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될런지, 저희들이 원했던 강고한 재발방지 대책이 수립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국방부가 유가족 측의 입장을 생각지 않고 사건 확대를 무마하는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채 상병은 지난 7월19일 경북 예천 내성천 안에 들어가 다른 장병들과 인간띠를 만들어 실종자 수색을 하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결국 14시간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고 당시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군의 안전불감증 논란이 일었다.
무리한 구조 작업 투입에 대한 비판에 대해 채 상병 부모는 장례를 도와준 해병대와 해병대전우회에 감사 인사를 하며 “수근이가 사랑했던 해병대에서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같이 비통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