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호 태풍 ‘카눈’이 10일 경남에 상륙한 뒤 부산과 울산·경북·충남·수도권 등을 할퀴며 전국이 몸살을 앓았다. 태풍의 영향권에 든 호남·제주·강원 등도 강풍과 폭우 피해가 잇따랐다. 인명 피해가 없지는 않았지만 내륙에 상륙한 후 세력이 약화되면서 우려만큼 크지 않았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가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20분께 경남 거제 부근에 상륙한 카눈은 경상도와 충청도, 경기 동부를 지나 오후 9시께 서울을 강타했다. 태풍은 상륙 후 20㎞ 안팎의 느린 속도로 이동하며 피해를 키웠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오후 6시 기준 전국 83개 시군구에서 모두 1만4153명이 임시 대피했다고 밝혔다. 경북이 9208명으로 가장 많고 경남 2960명, 전남 975명, 부산 350명 등이다.
이번 태풍으로 2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오후 1시 10분께 대구 군위군 효령면 병천교 아래 남천에서 67세 남성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급히 대구 시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오후 1시 45분쯤에는 대구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에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던 60대 남성 B 씨가 도랑에 빠져 실종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보다 세력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크고 작은 사고들은 계속됐다. 경북소방본부는 이날 오전 6시부터 낮 12시 30분까지 320여 차례 출동해 경북 영천과 경주시·경산시 등에서 주택과 차량에 고립된 시민 16명을 구조했다.
경북과 인접한 부산과 경남도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시설물 피해가 적지 않았다. 부산 송도해수욕장 인근 상가 건물의 유리창 일부가 파손됐고 중구의 한 도로에서는 대형 가로수가 뿌리째 뽑히기도 했다. 부산진구에서도 가로수가 넘어져 3~4개 차선의 차량 통행이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 경남 창원에서는 맨홀 뚜껑이 솟구쳐 올라 시내버스 바닥을 뚫고 들어가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사고가 났다. 당시 시내버스에는 5∼6명 안팎의 기사와 승객이 탑승 중이었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전남과 제주 지역도 험난한 하루를 보냈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향청리에서는 한 상가 건물 간판이 강풍에 뜯겨 주변 전신주의 전선에 걸리는 등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했다. 이 사고로 주변 상가 등 200여 곳에 정전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태풍이 많은 비를 동반하면서 산사태와 침수 피해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300㎜ 안팎의 많은 비가 쏟아진 강원 동해안에 피해가 집중됐다. 양양군과 강릉시에서는 관내 일부 하천이 범람하면서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고 원주·삼척·고성 등에서는 많은 비로 도로에 토사·낙석이 유출되면서 일부 도로가 통제됐다.
문화재들도 고초를 겼었다. 충북 보은에서는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속리산 정이품송의 가지가 강풍에 부러졌다. 부러진 가지는 정이품송의 북쪽 방향 2개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북 구미시 선산읍에 있는 천연기념물 ‘구미 독동리 반송’도 강한 비바람에 쓰러졌다. 현장을 확인한 관계자들은 가지 4개 정도를 잘라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들의 발도 묶였다. 코레일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고속 열차 161편, 일반 열차 251편의 운행이 중단돼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국내선 279편, 국제선 76여 편을 포함해 모두 355편이 결항했다. 공항별로 제주 122편, 김해 84편, 김해 81편, 인천국제공항도 18편이 운항하지 못했다.
도로 620곳, 둔치 주차장 284곳, 하천변 598곳, 해안가 198곳 등이 사전 통제됐다. 지리산 등 21개 국립공원의 611개 탐방로와 숲길 전 구간도 출입이 금지됐다. 광릉·세종 국립수목원은 10일 휴원했고 백두대간 국립수목원은 11일까지 문을 닫는다.
한편 시도와 시군구 재난상황실은 국장급 이상을 책임자로 해 태풍 상황이 끝날 때까지 24시간 비상근무 태세를 유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