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주의 주가 부진이 길어지면서 시가총액이 올해 들어 2조 8000억 원 가까이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의 핵심인 화학 사업이 대규모 인수합병(M&A)과 신규 투자로 인한 기대보다 부담이 커지면서 신용등급과 주가가 동반 하락 중이다. 화학과 함께 그룹의 양대 축을 맡고 있는 유통 계열사들도 고물가에 따른 소비 둔화로 된서리를 맞으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롯데그룹이 반등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밀린 사업을 재정비하고 신규 투자의 효과를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11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롯데그룹 계열 상장사 11곳의 시총은 이달 9일 기준 19조 5570억 원으로 올 초 대비 12.4%(2조 7878억 원) 급감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로는 감소 폭이 20%(4조 8708억 원)에 달했다. 코스피가 이 기간 7.42% 오르며 회복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롯데그룹 성장 동력이자 그룹 전체 시총의 30%를 차지하는 롯데케미칼의 부진이 뼈아팠다. 롯데케미칼의 시총은 연초 대비 18%(1조 3731억 원)나 빠지면서 코스피 시가총액 순위도 50위권에서 61위로 밀려났다. 2018년만 해도 롯데케미칼 시총의 3분의 1도 되지 않던 한화솔루션(54위)에 뒤지는 처지까지 몰린 것이다. 3월 인수를 마무리하며 구원투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동박 회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즈)도 기대에 못 미쳤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시총은 현재 2조 4946억 원으로 인수 대금 2조 7000억 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수되기 전 시점인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27%(9591억 원)나 줄었다. 그나마 같은 화학 계열의 롯데정밀화학은 2차전지 양극재 생산에 필요한 가성소다의 내수 증가로 시총이 올 초 대비 13% 늘며 체면을 지켰다.
롯데그룹 유통 부문의 핵심인 롯데쇼핑은 경기 침체 영향과 오프라인 유통시장의 부진으로 시총이 20%(5233억 원)나 빠졌다. 계열사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이며 롯데지주도 맥을 못 추면서 같은 기간 시총이 14.8%(4668억 원) 쪼그라들었다.
그룹의 급격한 재무 부담 증가와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시총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불황이 이어지며 현금 창출 규모가 줄어든 데다 차입금이 많다는 이유로 6월 신용등급이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한 단계 낮아졌다. 롯데케미칼은 롯데머티리얼즈를 2조 7000억 원에 인수했는데 인수 대금 납부 등을 위한 자금 조달이 이어지면서 1분기 기준 롯데케미칼의 총차입금은 8조 원을 넘어섰다. 그룹 내 비중이 큰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롯데캐피탈·롯데렌탈·롯데오토리스 등 계열사들의 신용등급도 연쇄적으로 하향됐다.
롯데그룹이 재무 위기 속에서도 신사업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점도 위험 요소로 꼽힌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바이오·모빌리티 등 신사업을 중심으로 5년간 국내에만 37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올해는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국내외 의약품 생산 공장 증설과 관련한 유상증자 참여도 예정돼 있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신사업과 인수 기업의 시너지 효과 등 성과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중국인 단체관광객 입국이 재개되면서 하반기 유통업 반등을 기대해볼 만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진협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분기를 기점으로 백화점의 매출 성장이 턴어라운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외국인의 매출 비중 추이가 중국인 단체관광 허용에 따라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