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소련은 스탈린 체제 아래 대숙청이 절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정치범은 물론이고 사소한 농담조차 허용되지 않던 시대. 소련 형법 제58조는 간첩이나 반역, 테러 행위, 방해 공작, 반소련 선전활동을 하는 자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향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 앞장서 사람들을 잡아들인 조직이 당시 비밀경찰인 내무인민위원부(NKVD)였다.
러시아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의 주인공 ‘볼코노고프 대위(유리 보리소프)’는 바로 이 조직의 일원이다. 그는 밀고를 받고 사람들을 체포한 후 ‘특수 심문’을 통해 자백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관을 발견하고, 이후 조직원들에게 차례로 소환이 이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볼코노고프 대위는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 전에 NKVD를 탈출한다.
볼코노고프 대위는 처분당한 절친한 동료 조직원의 시체를 목격하고 기묘한 환영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 명 이상의 사람에게 용서를 받는다면 그는 천국에 갈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때부터 그는 피해자들의 유족을 찾아 용서를 구하기 시작한다. 볼코노고프 대위의 뒤를 쫓는 이는 소련 당국의 신임을 받지만 폐병에 걸린 사실을 숨기고 있는 ‘골로브냐 소령(알렉산드르 야첸코)’이다. 인민들을 감시하는 이들도 다른 누군가에게 감시를 받는 끊임없는 굴레가 허위로 사회를 채운다.
이들의 추격전이 영화의 긴장감을 이어가는 가운데, 친지를 잃은 유족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한 희생자의 아이는 냉소적으로 답한다. “아무도 용서 안 해줄 거예요.” 모두가 그를 외면하는 레닌그라드(현 페트르부르크)의 거리에서 볼코노고프 대위는 홀로 내던져진 채 용서를 기다린다.
이 영화는 지난 2021년 개봉해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작품이다. 부부 감독 나타샤 메르쿨로바와 알렉세이 추포프가 연출을 맡았다. 스탈린 시대의 압제를 고발하고 있지만 NKVD가 당시의 군복 대신 새빨간 유니폼을 입는 등 느슨한 고증으로 현재 러시아 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폭력을 드러내고 있다.
메르쿨로바는 “이 영화의 근원은 폭력과 침탈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라면서 “불행하게도 그것은 현재와 과거를 따질 것 없이 이 세상의 근본적인 속성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오는 23일 개봉. 12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