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우주청 설립 장애물 넘으려면

박혁 스페인 카탈루냐 공대 전자통신 및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스페인, 역경 딛고 올 우주청 출범

전담기구 세워야 기능·효율 높아져

역량 대비 영향력 뒤떨어진 한국

정쟁 접고 설립 위한 결단 나서야





스페인 정부는 2015년 스페인우주청(AEE) 설립 계획을 발표했으나 실제 설립까지 우여곡절을 거쳤다. 스페인 최초 우주비행사인 페드로 두케가 2018년 6월 과학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속도가 붙는 것 같았지만 논란이 벌어졌다. 유럽우주청에 이미 많은 기여금을 분담하고 유럽 차원의 우주개발에 참여하는 스페인이 굳이 우주청을 따로 설립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두케 장관은 2021년 3월 스페인은 유럽우주청과 함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극적인 반전은 백지화 발표 두 달 뒤 일어났다. 새로 취임한 디아나 모란트 스페인 과학부 장관은 스페인우주청 설립을 포함한 과학기술혁신법을 발의하고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세비야에 본부를 마련한 스페인우주청이 올해 4월 공식 출범했다. 스페인우주청은 유럽우주청과의 협력을 증진하면서도 자국 우주산업체는 물론 각종 국책연구소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며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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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 국민적 영웅인 우주비행사 출신 장관도 넘지 못한 우주청 설립의 벽을 극복한 이유는 자명하다. 국가 대항전인 우주경쟁에서 미래의 부를 쌓으려면 강력한 전담기구가 필요하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논란을 불식시켰다. 필자는 지난달 개최된 제1회 세계 한인과학기술인 대회에 초청돼 우리나라의 우주항공 정책 추진 구조가 어떻게 개편되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방안이 현재 여건에서 최선의 선택지로 판단된다.

그동안 우주항공 대표 기관의 부재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보유 역량에 비해 뒤처져 보였다. 우주전담기관 설립으로 산업 생태계를 정책적으로 육성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선도국가들과는 대조적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 스페인우주청의 설립 과정은 우리에게 세 가지 시사점을 남긴다. 첫째, 우주전담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우주가 경제·산업·안보 등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며 각국은 우주거버넌스를 강화하는 체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둘째, 우주전담기관의 설립은 여러 기관의 분절된 기능을 일원화해 정부 조직의 통합성과 효율성을 강화하고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점이다. 셋째, 모두가 서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산업화의 후발주자이면서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경험이 있다. 상대적으로 우주산업 생태계 형성이 늦은 한국이야말로 우주항공청이 마중물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빠르고 정교하게 우주기술 및 산업 성장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출범할 우주항공청은 우주산업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지지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우주산업은 기술 괴짜들의 위시리스트가 아니라 미래의 성장 동력이라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우주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인력양성도 대중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우주항공청의 설립이 일반 대중들의 우주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 증진과 인식 제고를 이끌고 우주뿐 아니라 산업 전반의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주항공청 설립의 필요성에 모두가 공감한다면 정치적 분쟁과 조직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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