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으로 중국 부동산 위기의 ‘진앙’인 헝다(에버그란데)까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중국 부동산 및 그림자금융, 나아가 경제 전반에 대한 우려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17일 중국신문망에 따르면 헝다는 주식시장에서 정보공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당국 조사에 직면했다. 헝다그룹 주력 계열사인 헝다부동산은 16일 오후 늦게 상하이·선전거래소 공고에서 “정보공개 위법 혐의가 있어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됐다”고 밝혔다.
헝다그룹은 2021년 12월 227억 달러(약 30조 4000억 원)의 역외채권을 갚지 못해 공식적으로 디폴트를 낸 후 경영난에 빠졌다. 지난해 말 기준 부채가 2조 4000억 위안(약 440조 원)에 달해 최근 문제가 불거진 비구이위안(1조 4000억 위안)보다 부채 규모가 크다. 현재 진행 중인 구조 조정안이 원만하게 마무리되지 않으면 시장에 또 다른 충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비구이위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중국 부동산 연구기관 이쥐연구원의 옌웨진 총감은 “현재 시장은 1조(위안) 규모에 달하는 부동산 회사의 리스크를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구이위안 부채 규모(1조 4000억 위안)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비구이위안에는 3만 3207개의 협력 업체와 7만 명의 직원이 있어 디폴트에 빠지면 큰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헝다·비구이위안 등 민간 부동산 업체뿐 아니라 국영 업체도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블룸버그는 17일(현지 시간) 국영 부동산 개발 업체들도 광범위한 손실을 보고하는 등 민간기업의 위기감이 국영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의 분석 결과 본토와 홍콩 증시에 상장된 38개 국영 건설 업체 중 18개가 상반기에 예비 손실을 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손실을 낸 기업은 11개였지만 이번에 7개가 늘었다. 블룸버그는 “국영 부동산 업체도 흔들리면서 민간기업의 미완성 프로젝트를 떠맡을 수 있는 여력이 줄고 주택 구매자의 심리는 더 위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동안 민간 부동산 업체가 어려워지면 국영기업이 부실자산 등을 흡수하고 공사를 진행했지만 이 같은 해결책도 기대하기 힘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100대 부동산 개발 업체의 7월 매출이 지난해보다 33%나 급감했다며 “헝다는 과도한 빚이 문제였지만 비구이위안의 위기는 신뢰 하락에서 비롯됐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지적 속에 중국 당국은 일부 금융기관에 벌금을 부과하고 증시 지원책을 발표하는 등 ‘기강 잡기’에 나선 모양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은 18일 농업은행에 4420만 위안의 벌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부동산 개발 업체에 비정상적으로 자금을 제공했다는 이유에서다. 민성은행·화룽자산관리도 규정 위반을 이유로 벌금을 내게 됐다. 같은 날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거래 비용 인하, 자사주 매입 지원 등을 골자로 한 주식시장 활성화 방안을 공개했다. 한편에서는 중국 공안이 자금난에 빠진 금융사 건물에 찾아가 항의 시위를 했던 투자자들과 접촉해 자제를 압박했다. 공안은 이들의 시위가 부동산·금융권 위기, 나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대중의 분노로 이어지는 일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경제에 대한 미국 저명 인사들의 우려의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헤지펀드의 대부’ 레이 달리오는 17일 “중국이 대규모 부채를 구조 조정할 시기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당시 주룽지 총리가 설계한 것과 같은 대규모 부채 구조 조정이 분명히 필요하지만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베테랑 전략가 데이비드 로치도 “중국 경제가 주택시장 부진과 무역 둔화 등 여러 장애물과 맞닥뜨려 앞으로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외과 수술처럼 악성 부채와 질이 좋지 않은 자산만 없앨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며 “향후 글로벌 시장이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