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태원 그 골목엔 아직도 '냉기'…올 핼러윈에는 웃을 수 있을까요

지난달 13일 이태원 앤틱가구거리 입구에서 바라본 해밀톤 호텔의 전경. 사진=차민주 인턴기자지난달 13일 이태원 앤틱가구거리 입구에서 바라본 해밀톤 호텔의 전경. 사진=차민주 인턴기자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주요 번화가로 꼽히는 해밀톤 호텔 인근에서 심정지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속보가 전해질 때까지만 해도 159명의 희생자가 나올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7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이태원의 매출 회복이 85%에 미친다"는 발표를 내놓은 가운데 서울경제신문 인턴기자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이태원을 찾았다.

폭우가 쏟아지던 7월 13일. 예전에 비해 이태원은 활기가 돌고 있었지만 여전히 참사의 흔적은 남아있었고,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에 자리잡은 추모공간은 기자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이태원 상권 회복을 위해 중기부와 서울시가 지난 3월부터 추진한 각종 사업의 내용이 담긴 전단지가 거리 곳곳에 붙어 있었지만 이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이는 드물었다.

대다수의 상인들은 '기자입니다'라는 말에 곤란한 표정을 짓고 인터뷰를 거부했다. 참사 뿐만 아니라 이후 이어진 상황 속에서 심적으로 짙은 상흔이 남았을 것이기에 조심스레 그들의 사정을 들어봤다.

한 외국인 관광객이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차민주 인턴기자한 외국인 관광객이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차민주 인턴기자


“매출 회복되긴 했지만 85%는 아니다”


해밀톤 호텔 근처에서 편의점을 운영 중인 A씨는 “이태원상권회복상품권(이태원 상품권) 덕분에 이태원에 찾아오는 분들이 늘어난 것 같다. 매출은 50% 이상 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기부가 말하는 85% 수준은 아니다”라며 “이태원 상품권은 효과가 큰데, 해당 지원을 뒤늦게 알게 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정책 홍보의 미흡함을 지적했다.

A씨는 참사 인근 지역의 핀셋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참사 인근 상권이 타 지역에 비해 두드러지게 하락했다. 그런데 상품권을 6개 동에 쓸 수 있게 해 사람들이 이를 이태원 참사 인근 지역이 아닌 해방촌이나 한남동에서 사용하기도 한다”며 “이태원의 중심 상권은 해밀톤 호텔 골목 근처다. 해당 상권을 회복시켜야 이태원 전체 상권의 회복이 살아날 것”이라고도 했다.

서울시는 지난 3월부터 '이태원 일상 회복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공공기관, 로컬 크리에이터와 민간이 '원 팀'을 이뤄 추진하는 '헤이 이태원'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사업이 시작되고 3개월이 지난 6월, 서울시는 이태원 1동의 5월 유동 인구(KT 통신사 기준)가 참사 직전인 지난해 10월 4주차 대비 75.6%수준까지 회복됐다고 밝혔다. 이태원 1동의 5월 매출액(신한카드 기준) 또한 지난해 10월 4주차의 76.3%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7월 중기부는 이태원 상권의 매출 회복세가 참사 이전과 비교했을 때 85% 수준에 달한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진행하는 ‘이태원 일상 회복 대책’ 사업. 사진=서울경제DB서울시가 진행하는 ‘이태원 일상 회복 대책’ 사업. 사진=서울경제DB


이태원 길거리 곳곳에 전시돼 있는 중소벤처기업부의 ‘헤이 이태원(HEY,ITEAWON)’ 프로젝트 내용. 사진=차민주 인턴기자이태원 길거리 곳곳에 전시돼 있는 중소벤처기업부의 ‘헤이 이태원(HEY,ITEAWON)’ 프로젝트 내용. 사진=차민주 인턴기자



그러나 A씨를 포함한 다수의 상인들은 중기부와 서울시 발표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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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역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B씨는 “이태원에 점차 활기가 돌고 있다”면서도 “85%는 아니다. 참사 이전에 비하면 60%정도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매출 회복의 원인으로는 “참사 이후 시간이 흐르기도 했고 날씨가 따뜻해진 영향이 더 크다”며 “단순히 정부 정책의 효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태원 참사 지역와 인접해 있는 세계음식거리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C씨는 매출 회복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C씨는 “매출 회복은 50%도 안 된다. 중기부에서 발표한 85% 회복은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C씨는 "이태원 상권을 회복하려면 정부가 이태원이 안전한 지역임을 알리는 것이 우선이다. 참사 인근 지역은 여전히 회복이 더딘 추세”라며 "10월이 되면 핼러윈 축제가 다시 열릴 텐데, 그때 정부가 얼마나 제대로 된 안전 대책을 펼칠지도 관건"이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참사에 대한 언급을 꺼렸다. 한 상인은 “참사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 부담스럽다. 또 이곳 상권이 침체되고 있다고 보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이태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손님이 더 끊길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이태원 시장 입구에 있는 의류 상가. 사진=차민주 인턴기자이태원 시장 입구에 있는 의류 상가. 사진=차민주 인턴기자


상권 회복세, 업종별로 달랐다…의류업은 여전히 “울상”


상인들이 실감하는 정부의 지원 사업은 '이태원 상품권'에만 치중돼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상인 13명 중 8명은 이태원 상품권 외의 다른 사업은 알지 못했다.

한편 상권 회복세는 외식업에서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원의 주요 업종인 의류업의 속사정은 달랐다.

해밀톤 호텔 골목 인근에서 35년째 큰옷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D씨는 “이태원 상품권을 사용하는 고객은 100명 중 1명 꼴”이라며 “정부의 지원 사업은 외식업에만 치중돼 있다. 의류업은 참사 이후로 거의 없어지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태원 시장 입구 부근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다는 E씨도 “매출 회복은 50%에도 못 미친다. 상품권을 사용하는 이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라며 “그래도 외식업이라도 잘 되는 게 낫다. 그래야 사람들이 이 거리에 모이고 그러다보면 상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겠나”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이태원의 또 다른 주요 업종인 가구업의 경우 타 업종에 비해 타격이 비교적 덜했다. 앤틱가구거리에서 빈티지 가구를 판매하는 F씨는 “가구거리가 참사 지역과 인접하지 않고, 소비층이 50~60대이기 때문에 매출이 크게 줄어들진 않았다”면서도 “그래도 참사 이전부터 상권 자체가 죽어가고 있고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느껴왔다”고 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 사진=차민주 인턴기자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 사진=차민주 인턴기자


"정부가 나서서 '이태원' 탈바꿈시켜야"


일각에서는 근본적인 상권 회복을 위해 '이태원'이라는 환경을 대대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상권 회복이 곧 트라우마 회복”이라며 “현재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 중 유의미한 사업은 ‘이태원 상권 회복 상품권’과 ‘우리 동네 아트테리어 사업(소상공인과 지역 예술가의 협업을 통해 가게 내·외부 공간 인테리어 등의 디자인 개선을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사업) 두 개 뿐”이라고 상황을 짚었다.

이어 “문화행사나 거리 공연은 장기적으로 효과가 없다”며 “이태원은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곳이기 때문에 정부의 배달 사업도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한 "아트테리어 사업 활상화를 통해 이태원 거리를 ‘리뉴얼(renewal)’하고 참사로 인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고 거리의 특색을 보존해야 한다”며 “상권 회복의 주체는 상인들이되, 정부에는 기본 인프라 혹은 환경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민주 인턴기자·안유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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