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LG·카카오 등 덩치 큰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주도권을 쥐었던 국내 생성형 인공지능(AI) 업계 구도가 후발 주자들의 참여로 다변화하고 있다. 대규모 자본을 등에 업고 꾸준히 AI 기술에 투자해 온 SK텔레콤(017670)·KT(030200) 같은 통신사들이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스타트업들도 기술력과 민첩성을 바탕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11월 AI컴퍼니로의 전환을 선언한 SK텔레콤은 최근 들어 국내외 투자를 강화하며 생성형AI 사업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출시한 자사 AI 서비스 ‘에이닷’이 그간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최근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AI 스타트업인 ‘앤스로픽’에 1억 달러(약 1300억 원)를 투자했다. 이 회사는 2021년 오픈AI 연구원들이 주축이 돼 설립된 곳으로 SK텔레콤은 이곳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다국어 언어를 지원하는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하고 자사 AI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발판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그간 국내 유망 기업들을 중심으로 형성해왔던 AI 생태계 동맹을 최근 국외로 확장하기도 했다. 회사는 지난달 도이치텔레콤·싱텔·이앤그룹 등 글로벌 대표 통신사와 연합체를 결성해 통신사 중심의 AI 혁신을 선포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가 선점한 AI 산업에서 통신사들의 장점을 앞세워 상황을 재편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올 초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에서 국내 기업들과의 ‘K-AI 얼라이언스’ 결성을 통해 맺은 기술·사업 동맹을 글로벌로 확장한 것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AI 기술은 기존 사업과 결합해 서비스 효율을 높이는 밸류를 만들 수 있다”며 “통신사야 말로 전 세계에서 고객이 제일 많고 고객과의 관계 설정 난도도 높은 만큼 AI를 통해 내부 운영 효율을 높이는 데 성공한다면 이를 발판 삼아 다른 산업에서도 통하는 플랫폼 레퍼런스를 만들고 사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KT역시 클라우드 사업에서의 강점을 바탕으로 ‘풀스택(Full stack) AI’라는 구호 아래 기술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풀스택 AI란 AI 서비스에 관여하는 반도체, 클라우드, LLM, 응용 서비스 등 모든 단계마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시너지를 도모하는 것이다. 더불어 KT는 6월 AI 사업 관련 설명회에서 자사 AI 기술을 적용할 대표 분야로 기존 물류, AI컨택센터(CC)에 더해 교육·헬스케어·로봇을 소개하며 AI 비즈니스 청사진을 공개했다. 회사는 오는 하반기까지 자사 생성형AI 사업의 구심이 될 LLM ‘믿음’을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고도화해 2025년 AI 산업 관련 매출 최소 1조 원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는 스타트업들도 저마다 틈새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17일 국내 최초로 기업간거래(B2B)향 자체 LLM을 선보인 코난테크놀로지(402030)는 200여 명에 불과한 인력으로도 국내 빅테크에 버금가는 모델 스펙을 선보였다. 1999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오픈AI 발 생성형AI 혁신 조짐이 보이자 국내 어느 기업보다 재빨리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H100 12대를 발주해 사업을 틀었다. 코난테크놀로지는 보안과 비용 부문에서의 강점을 바탕으로 기업·정부 시장을 중점 공략할 방침이다.
업스테이지도 오픈AI의 GPT 애플리케이션개발인터페이스(API)를 이용해오다 최근 자체 모델을 개발하며 기술 자급화의 물꼬를 텄다. 메타가 지난달 공개한 차세대 오픈소스 LLM 라마2(Llama2)를 기반으로 구축한 이 모델은 여러 평가 기준에서 원조 모델을 앞지르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AI 스타트업 위커버는 빅테크 LLM을 쓰되 태생적으로 언어 모델의 한계점으로 지적되는 할루시네이션(환각) 등 단점을 ‘검색 증강 생성’ 등 자사 기술로 보완해 LLM 기술을 활용하고 싶지만 단점 때문에 망설이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러한 솔루션을 바탕으로 특히 검색 정확도가 중요한 의료·법률 등 틈새시장을 공략 중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존 빅테크들이 대형 파운데이션 모델을 내세워 경쟁하던 시장 초기와 달리 이제는 각 분야별 작고 특화된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국내 기업·스타트업들이 지금까지는 다소 밀렸더라도 비즈니스 기회는 열려 있고 각 영역에서 독보적인 모델을 제시한다면 시장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