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스타트업 하기 좋은 나라다. 벤처캐피털 생태계가 활성화돼 있고 정부 차원의 지원도 좋다. 여러 대학에서 쏟아지는 인력 풀도 나쁘지 않다. 스타트업 게놈의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은 올해 ‘스타트업 하기 좋은 도시’ 12위에 올랐다. 베를린(13위), 암스테르담(14위), 도쿄(15위)보다 높다.
다만 이는 한국인에 한해서다. 한국에서 창업하려는 외국인은 생각보다 많은 허들을 넘어야 한다. 첫 단계인 비자부터 발목을 잡는다. 기술창업비자(D-8-4)가 대표적이다. 이를 받으려면 학사 이상의 자격을 갖고 법인을 설립하거나 적어도 설립 절차를 진행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가 점수제로 운영하는 창업이민종합지원시스템(OASIS·오아시스) 프로그램 점수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이런저런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덤이다.
비자 발급 후에도 2년마다 갱신이 필요한데 이는 2년마다 사업 실적을 증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스타트업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지식재산권이나 사업 실적이 아닌 혁신성과 사업성 위주로 평가해 비자를 발급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유럽 역시 개인 자격보다 사업 모델의 혁신성, 창업 동기, 연구 실적 등을 토대로 비자를 발급해준다. 특히 네덜란드는 외국인을 위한 별도 스타트업 비자를 운영 중이고 ‘사후 평가’로 자영업 비자를 주기도 한다.
이에 비자 발급 실적도 미미하다. 2013년 도입 이후 지난해까지 기술창업비자의 발급 수는 230건에 그친다.
게다가 지금 유효한 비자는 이 중 절반인 110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 회사를 세운 외국인 창업자가 사업을 유지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의미다. 지역별 편중도 심하다. 기술창업비자로 체류하는 외국인 중 90% 이상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손지호 한국바이오협회 산업지원본부장은 “신산업 특성상 창업·영입 등의 이유로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많다”며 “이들이 가장 토로하는 부분이 비자 문제”라고 밝혔다.
한국에 입국하더라도 주거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월세보다는 전세 계약으로 집을 구해야 하는데 이는 입국하자마자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인 만큼 이해도 쉽지 않다. 이철희 서울대 교수는 “서류 발급 등에서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절차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