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계도기간 종료를 앞둔 가운데 법제화를 둘러싼 각계 논란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노동·건강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들은 2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리 플랫폼에 의한 의료 민영화와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간 플랫폼에 의한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것은 영리병원 도입이나 마찬가지이며, 필요하다면 공공플랫폼으로 제한하라는 게 이들 단체의 논리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와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루게릭연맹회, 한국폐섬유화환우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이날 국회 앞에서 '사기업과 투기꾼들의 의료진출 통로인 비대면진료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비대면진료 허용 대상이 초진이냐 재진이냐, 의원이냐 병원이냐 등은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닥터나우와 같은 영리 기업으로 하여금 비대면진료를 중개하도록 함으로써 의료를 상업화시키는 게 핵심 쟁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비대면 진료 앱인 '닥터나우'에 네이버 등 대기업부터 여러 벤처캐피털들이 500억 원 이상 투자했다”며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 공공재인 의료가 상업화됐을 때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이 닥칠 것으로 예상됨에도 정작 국회가 이런 본질적 문제에 대해 따지지 않는 점이 한심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비단 비대면진료 중계 뿐 아니라 진료 예약을 돕는 등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과정에 민간 플랫폼들이 속속 진입하는 자체가 의료 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내놨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소아청소년과 진료 예약을 돕는 애플리케이션 '똑딱'이 최근 유료로 전환된 사례를 언급하며 "비대면 진료 역시 영리 기업이 독점하게 됐을 때 이런 일들이 더욱 많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플랫폼들이 영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잉진료가 늘고 의료비가 오르면 영리병원을 도입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건강보험 재정이 수천 억, 수조 원 가량 낭비될지 알 수조차 없지만 정부는 건강보험에 대한 영향 평가를 제대로 한 적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려면 사기업이 아닌 공공플랫폼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들은 비대면 진료가 시작하게 된 과정과 시범사업 기간 일어난 부작용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았다. 박민숙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종료되자 정부는 5월 17일 시범사업 초안을 발표한 지 2주 만에 졸속으로 최종안을 확정했다"며 "국회가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채 진행되고 있는 시범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목적으로 의료법 개정을 심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범사업 기간 동안 영리 플랫폼들이 전문의약품 광고부터 의약품 선택, 불법진료, 불법조제 등 온갖 문제를 일으켜 왔지만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했으며, 플랫폼 스스로도 이런 부작용을 걸러낼 능력은 물론 의지가 없어 국가 차원의 관리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정보 중에서도 민감 사안인 의료정보가 유출되거나 잘못 활용될 소지에 대해서도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피임약 등 비급여 처방 등 오남용은 기본이고 비대면 처방 자체가 불가능한 향정신의약품조차도 마구 처방되고 있다. 통제 불능 상태로 부당 청구해 그 총액이나 규모조차도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플랫폼이 의료 전반을 좌우하는 슈퍼앱이 되면 의료는 완전히 시장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오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 1소위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본격적인 법제화에 앞서 지난 6월 시범사업 형태로 시작된 비대면진료는 오는 31일 3개월의 시범사업 계도기간이 종료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1일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원격의료산업협의회 등 관계자들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자문단' 실무회의를 갖고 "계도기간 종료 후에는 지침 위반에 대해 보험 급여 삭감, 행정지도·처분 등으로 적극 관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의료기관이 초진 대상 환자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수진자 자격 조회'와 연계해서 초진 대상자를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으며, 마약류 및 오남용 우려로 처방을 제한하는 의약품 목록도 전문가 논의를 거쳐 추가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