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4일 기준금리를 연 3.50%로 다시 한번 동결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추가 긴축 우려와 1340원대로 높아진 원·달러 환율에도 중국 경기 부진이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금리를 더 올리지 못한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까지 진입했으나 연말까지 다시 3%대 안팎으로 반등할 수 있고 최근 가계부채도 빠르게 늘어나는 만큼 금리를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다만 오는 25일(한국시간)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잭슨홀 연설에서 어떤 발언을 내놓을지에 따라 당분간 시장 변동성은 커질 수 있다.
24일 한은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 2월부터 4월, 5월, 7월에 이은 5연속 금리 동결이다. 미 연준이 지난달 말 정책금리를 5.25~5.50%로 인상한 만큼 양국의 금리 역전 폭은 사상 최대인 2.00%포인트까지 벌어진 상태가 유지됐다.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한 것은 인상도 인하도 할 수 없는 불가피한 국면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은이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 1.4%와 물가 상승률 전망치 3.5%를 모두 그대로 놔둔 것은 당분간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다만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3%에서 2.2%로 0.1%P 포인트 낮췄다. 내년 물가 전망은 2.4%로 유지했다.
먼저 물가를 살펴보면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2.3%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기저효과가 점차 사라지면서 하반기에는 다시 반등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연말엔 3% 안팎까지 다시 높아질 수 있는 만큼 물가 안정에 대한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국제유가도 다시 오르면서 물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85달러 수준으로 연중 최고 수준이다.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7월 수입물가지수가 3개월 만에 상승 전환하고 7월 생산자물가지수 역시 4개월 만에 반등했다. 국제유가가 수입물가, 생산자물가를 통해 소비자물가에 시차를 두고 영향을 주는 상황이다. 소비자물가가 2%대로 떨어졌어도 8월 기대인플레이션이 3.3%로 변동이 없을 정도다. 물가가 안정됐다고 보고 금리를 움직일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계부채도 큰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7월 말 기준 은행 가계대출은 전월보다 6조 원 증가하면서 2021년 9월(6조 4000억 원) 이후 2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4월 2조 3000억 원, 5월 4조 2000억 원, 6월 5조 8000억 원 등으로 증가 폭이 점차 확대되면서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높은 금리에도 정부의 규제 완화와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 영향으로 집값이 더 떨어지지 않고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택 매수가 이어지는 영향이다.
가계부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 한은 책임론도 부상하고 있다. 금리가 더 오르지 않고 앞으로 내릴 일만 남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높은 금리에도 집을 매수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대출에서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지는 것도 금리 인하를 기대한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금통위로서는 금리를 더 올리진 못하더라도 인하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장 우려하는 가장 큰 변수는 미국 금리와 원·달러 환율이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3원 내린 1326원으로 거래됐다. 이날 환율은 10.7원 내린 1329.0원으로 출발해 장중 하락 폭을 키우고 있다. 다만 환율 수준 자체가 1320원대로 높아진 가운데 지난해 국제 금융·외환시장에 큰 충격을 줬던 파월 의장의 연설을 앞둔 상태다. 연준 정책 기대 변화로 달러 강세가 나타난다면 원·달러 환율은 언제든이 급등할 수 있다.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이 공개된 이후 미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여기서 파월 의장이 중립금리가 높아졌다는 등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을 한다면 시장 불안은 확산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중립금리가 높아지면서 고금리가 장기화한다면 우리로서는 물가가 하락하더라도 금리를 낮출 수 없는 부담을 안게 된다.
이창용 총재도 22일 국회에 출석해 이같은 상황을 우려했다. 이 총재는 “한미 금리 차가 굉장히 커지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고 혹시나 외환시장이 불안해질까 보고 있다”며 “미국 경제가 강해서 시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금리를 더 올릴 경우엔 외환시장 영향을 보고 대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도 이 총재는 통방회의 직전 “금통위보다 잭슨홀이 더 뉴스가 많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