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마다 나오는 자조가 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노벨 과학상이 나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코리아 연구개발(R&D) 패러독스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세계 1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율에도 성과가 없다는 한탄이다.
정부가 내년도 국가 주요 R&D 예산을 올해보다 14% 깎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카르텔’을 언급하며 “나눠 먹기식 R&D는 원점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데 따랐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삭감안을 발표하며 “늘어나는 예산 속에서 안일함과 기득권이 자랐다”고 꼬집었다.
대통령의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특정 대학, 특정 과가 연구 과제를 독점하는 사례도 있고 ‘연구 자체를 위한 연구’도 적지 않다. 국가 R&D가 유일한 밥벌이 수단인 좀비 기업도 많다. 과제 성공률 98%가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너무 급하다.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관행 개선을 주문한 시점이 6월 말이다. 내년 R&D 예산으로 30조 원이 넘는 금액을 내놓았던 과기부는 대통령의 불호령에 부랴부랴 예산 구조 조정에 나서야만 했고 두 달 만에 내놓은 결과가 전년 대비 14% 삭감이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현장에서는 “이대로면 전기요금이 없어 장비도 제대로 돌리지 못한다”는 아우성이 나온다.
더 큰 의문은 ‘R&D 카르텔’이 정확히 무엇이냐는 것이다. ‘나눠 먹기’의 정의가 지나치게 불분명하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나눠 먹기 R&D고, 나오면 도전형 R&D인가. 이번 발표에서 국가전략기술 R&D 예산은 늘리고 기초 연구와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을 깎았는데, 한 연구원은 “국가전략기술 관련 연구는 상용화가 머지않은 만큼 국가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나선다”면서 “기초 연구를 못한다며, 노벨상이 없다며 지적해 놓고 관련 예산을 깎는 건 무슨 의미냐”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R&D의 고질병인 ‘빨리빨리’와 ‘성과 집착’이 예산 편성 과정에 옮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잘못된 부분은 당연히 고쳐야 하지만 예산 삭감이라는 단순하고 쉬운 길이 아니라 무엇이 왜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