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분류 업체 대표 A 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를 추가로 뽑아야 하는데 이미 법적 고용 한도가 꽉 찼기 때문이다. 폐기물 분류 업무는 일이 고된 탓에 내국인을 구할 수도 없다. 식품 제조 업체 대표 B 씨도 네팔 출신 직원 C 씨의 출국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고민이 깊다. C 씨처럼 오래 일해 숙련도가 높은 직원을 대체할 인력을 구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앞으로 제조업 사업장에서 외국 인력을 현행 수준의 2배인 최대 80명까지 고용할 수 있다. 업무 숙련도가 높은 외국 인력이 기존 사업장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길도 넓어진다.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던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요구하던 대책들이 동시에 시행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와 법무부는 24일 제4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킬러 규제 혁파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국내 중소 제조·서비스 사업장이 더 많은 외국 인력을 통해 인력난을 해소하도록 정부가 돕는 것이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 인력을 관리하는 고용부는 사업장별 외국 인력의 고용 한도를 2배 이상 확대한다. 이렇게 되면 제조업은 9~40명에서 18~80명으로, 농축산업은 4~25명에서 8~50명으로, 서비스업은 2~30명에서 4~75명으로 한도가 늘어난다. 고용 한도 확대는 인력난이 심한 중소기업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대책이다. 이를 위해 고용부는 올해와 내년 외국 인력 도입 규모도 확대한다. 올해 최대치였던 11만 명 규모의 외국 인력이 12만 명으로 증가하고 내년 외국 인력도 12만 명 이상 수준에서 정해진다.
특히 고용부는 외국 인력의 고용이 제한됐던 업종도 줄이기로 했다. 우선 택배업과 공항 지상 조업의 상하차 직종에 외국 인력의 고용이 가능해진다. 추가로 고용부는 인력난이 심각한 업종의 외국 인력 활용 방안도 마련한다. 호텔 및 콘도업의 청소 업무와 음식점업의 주방 보조 일처럼 단순 직무가 검토 대상이다. 고용부는 외국 인력이 숙련도를 높일 수 있도록 이들이 출국·재입국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기근속 특례를 신설한다. 또 사업주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고용허가제의 활용 절차를 간소화하고 외국 인력의 직무 능력을 제고할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있던 규제도 걷어낸다. 680여 개의 조문 전체가 대상이다. 방향은 현장 기술 발전과 세계적 기준에 맞춰 조문을 현행화하고 부처 간 중복되는 규제 성격을 제거하는 것이다. 동시에 고용부는 현장의 요구가 큰 산업안전 규제는 즉시 없애기로 했다. 지난해 6월부터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80여 개 과제를 발굴했다. 이 중 50여 개의 개선이 완료됐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공장의 비상구 설치 기준을 현장에 맞게 고치고 관련 행정을 간소화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구조적 환경 변화와 급속한 기술 발전에 뒤처져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과감히 혁신해야 노동시장에 활기가 돈다”고 강조했다.
숙련공·첨단 분야 등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비자 규제도 대폭 완화한다. 법무부는 외국인 숙련기능인력(E-7-4) 쿼터를 지난해 2000명에서 올해 3만 5000명으로 17.5배 늘린다. 기업이 직접 추천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한국어 능력 등 필수 요건만 갖추면 우선적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외국인 유학생에게는 졸업 후 취업할 수 있는 분야를 3년간 전면 해제한다. 그간 유학생은 사무·전문직에만 취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난해 취업률은 16%에 불과했고 대다수는 제3국이나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법무부는 조선 업체에서 채용을 조건으로 현장 교육을 받은 경우 유학생이 전문인력(E-7) 자격으로 비자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현재 시범 운영 중인 유학생 대상 지역 특화 비자도 확대한다. 또 우수 인재의 배우자에 대해 기존에는 동반비자를 부여해 취업 활동에 제한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취업비자를 줘 첨단 분야 유학생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기업이 합법 체류 외국인을 충분히 채용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고용 기회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