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시범사업 계도기간이 종료되는 비대면진료가 법제화 기약없이 초, 재진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의를 반복하며 장기 표류할 위기에 처했다. 보건복지부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안을 토대로 만든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 문턱을 넘지 못한 가운데 의사단체의 반대 입김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개원의 중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28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현황과 개선 방향'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건강과 의료체계를 위협하는 초진(첫 진료) 비대면 진료는 불가능하다는 대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6월부터 시범사업에 돌입하며 비대면진료 대상을 재진 환자로 한정했다. 단 섬·벽지에 거주하는 환자나 65세 이상으로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환자, 장애인, 감염병 확진 환자 등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초진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예외 적용자 분류가 모호하다며, 초진 허용 환자 범위를 명확히 하고 대상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는 게 의협의 주장이다.
의협은 이날 협회 회원인 의료진 643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4부터 이달 6일까지 설문조사 및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도 공개했다.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5.0%는 비대면진료의 초진 허용은 절대 불가하다고 답했고, 38.0%는 재진을 기본으로 하되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초진을 허용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진을 반대하는 이유로는 △안전성 문제 오진 가능성 △ 의료 쇼핑 가능성 △본인 확인 불가 △병원의 영리 추구 △약물 오남용 가능성 등이 거론됐다. 특히 비대면진료의 쟁점 중 하나인 18세 미만 소아청소년 대상으로 비대면진료 촞에 대해서는 '부적절하다'는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65%였다. 안전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의료제공이 가능하지 않다는 게 이유다. 구체적으로는 ‘소아 환자는 안전성이 제일 중요하다’거나 ‘의사소통이 어렵고 병세 진행 돌변 가능성이 높아 비대면진료가 불가하다’, ‘의료사고 가능성과 소송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등의 답변이 나왔다. 현재 정부는 일단 재진을 원칙으로 하되,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문을 닫는 휴일과 야간에 비대면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회원은 50.9%, 참여한 회원은 49.1%로 유사한 비중을 보였다.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복수응답)로는 ‘법적 책임소재에 대한 면책 조치가 없어서’가 66.5%,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서’가 61.8%였다. 반대로 참여한 회원들은 참여한 이유로 '환자가 요구했기 때문(65.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회원의 31%는 ‘시범사업보다 개선된 방안이 시행된다면 참여하겠다’는 답을 내놨다. 원격의료를 무조건 반대하던 과거와 비교하면 의사들의 태도가 크게 바뀐 것이다.
의협은 "비대면 진료 중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의료사고나 과오는 의사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사안"이라며 "이에 대한 법적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는 '의사 통제 범위 밖 요인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88.0%에 달했다. 그 밖에 과대광고, 의약품 오남용, 환자 유도 행위 등 시범사업 기간 드러난 불법 사례 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의협은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의 과대광고와 초진 환자 유도 등 불법행위, 의약품 오남용 사례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며 "현재 시행 중인 시범사업과 지난 3년간 한시적으로 진행한 비대면 진료에 대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