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 롯데케미칼(011170)이 신용등급 강등 이후 처음으로 공모 회사채 시장에 복귀해 최대 3000억 원을 조달한다. 당초 최대 5000억 원 규모로 발행하려다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부담으로 물량을 축소했다. 다만 롯데케미칼은 예정된 설비투자 규모가 막대해 자금 조달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지 관심이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이날 15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해 2년물(1000억 원)에 6000억 원, 3년물(500억 원)에 1600억 원 등 총 7600억 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롯데케미칼은 다음 달 5일 최대 3000억 원까지 증액·발행할 수 있으며 조달 자금은 전액 9월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어음(CP)을 상환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발행 주관은 키움증권(039490)과 한국투자증권·KB증권·신한투자증권·삼성증권(016360) 등이 맡았는데 발행 규모를 고려하면 대규모 주관사단이다.
롯데케미칼은 이달 초만 해도 5년물을 포함해 2500억 원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했다. 수요예측이 흥행할 경우 최대 5000억 원까지 증액 발행한다는 계획이었다. 올 2월에도 35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해 최종 5000억 원으로 증액한 적이 있다. 이는 롯데케미칼이 2025년까지 계획한 설비 및 지분 투자 규모가 연평균 4조 원인데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투자 재원을 마련하려면 차입 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이 6월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한 단계 떨어져 자금 조달에 비상등이 켜졌다. 지난해 2분기 이후 5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한 데다 차입 규모도 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됐다는 이유였다.
결국 롯데케미칼 회사채에 대한 투자 수요가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했다. 3년물 기준 6월 초 4.4% 중반대였던 민평금리(민간 채권 평가사들이 평가한 금리)는 전 거래일에 4.723%까지 치솟았다. 일반 회사채 ‘AA-’ 등급 3년물의 민평금리가 4.523%이니 한 단계 낮은 신용등급 회사채보다도 금리가 20bp(1bp는 0.01%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실적 개선이 더뎌질 경우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이 또 한 차례 강등될 수 있다는 비관적 관측까지 나온다.
결국 투자 수요 위축을 우려한 나머지 발행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이 이날 수요예측에서 목표액의 5배가 넘는 자금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2년물과 3년물은 개별 민평금리 대비 각각 5bp, 11bp에서 모집 물량을 채웠다. 시장이 평가한 롯데케미칼 회사채 가격보다 더 싸게 사려는 투자자가 많았다는 의미다.
롯데케미칼은 공모채 시장 입지 약화에 따라 단기자금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케미칼은 신용등급 강등 이후 7월 1100억 원의 CP를 발행했고 21일에도 1000억 원의 CP를 발행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롯데케미칼의 단기성 차입금은 4조 1717억 원으로 총차입금(8조 7252억 원)의 47.8%를 차지한다. 지난해보다 2541억 원, 2021년보다 2조 3946억 원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