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 시간) 저녁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 상점들의 상당수는 문을 닫고 있었다. 여름철 휴가 기간이 시작되자 도시를 빠져나간 사람들이 많아 거리 자체도 조용했다. 한 달 전 알제리계 청소년 나엘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로 전쟁터를 연상케 하던 모습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하지만 샹젤리제 거리를 빠져나와 파리 외곽의 골목길에 들어서자 프랑스 사회의 속살이 드러났다. 벽면 군데군데 ‘정의(Justice)’라는 단어가 낙서로 쓰여 있었다. 남아 있는 시위 흔적에서 이민 2·3세가 가진 프랑스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불만과 불안을 읽을 수 있다.
이번 시위는 17세 나엘이 파리 외곽 도시 낭테르에서 경찰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 총격으로 숨지자 수일 간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됐다. 폭력 시위는 과격했다. 경찰 역시 특수부대와 장갑차에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통제에 나섰다. 경찰 병력 4만 5000명이 투입됐고 재산 피해액만 10억 유로(1조 4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체포된 인원은 3500여 명. 이들의 평균 나이가 17세였다. ‘톨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에서 이민 2·3세의 소요 사태는 잊혀질 만하면 폭발하는 문제다.
그동안 유럽 이민의 역사는 곧 프랑스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 프랑스의 이민자 비율(13.0%)은 유럽 평균(11.6%)에 비해 높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병력과 노동력 보강을 위해 북아프리카 3국(알제리·튀니지·모로코) 이민자 수용에 적극적이었다. 북아프리카 3국 출신이 전체 이민자의 30%에 육박하는 배경이다. 이들 3국 이민자는 프랑스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프랑스어도 가능해 부족한 노동력을 대신했다. 세계대전 당시에는 프랑스군으로 징집돼 6만 명 이상이 프랑스 군인으로 전사했다.
이처럼 강한 이민 국가 현상은 ‘하나의 프랑스’라는 점을 내세운 이민자 동화정책의 효과였다. 그 정점에는 공교육이 있었다. 프랑스 공교육은 이민자뿐만 아니라 자녀가 사회와 문화에 동화되고 정치적으로 통합되도록 돕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해왔다. 프리랜서로 파리에서 10년 이상 이민 생활을 이어가는 강민영 씨는 “인종에 대한 차별이 없다”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는 담임교사가 ‘각 나라의 문화를 소개해 달라’고 해 한국 문화 소개 시간을 가졌고 나라별 이민자들과 나누는 소통의 강도는 상당히 높다”고 전했다. 프랑스 교육부는 특히 유아 공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이 시기가 언어 불평등을 보완할 수 있는 적기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문제는 초등교육부터 나타난다는 게 현지 목소리다. 파리 시내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도미니크 피두띠 씨는 “부의 격차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이후부터 이민자와 프랑스인이 서로 격리를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같은 유치원을 다녔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는 이민자별로 공립과 사립이 나뉘는 모습이 확연하다”며 “‘마그레브(아랍어로 ‘해가 지는 서쪽’ 북아프리카 3국을 일컫는 말)’는 공립에 진학하고 백인과 아시안은 사립학교에 간다”고 설명했다.
‘마그레브’와의 격리 현상은 결국 종교 문제로 연결된다. 프랑스 이민자 동화정책은 ‘특정한 종교나 개인 혹은 어떤 공동체가 분열시킬 수 없는 완전한 실체’라는 사회적 합의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탓에 공립에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없다. 종교적 색채가 드러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사립에서는 가톨릭 전통을 가진 프랑스답게 적극적으로 종교 행사를 열고 있다.
마그레브가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다 보니 빈부 격차로 인해 대도시 외곽에 밀집해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방리외(banlieue)라고 지칭된다. 이번 시위를 진정시키기 위한 프랑스 정부의 대책도 방리외 지역 재개발에 예산 투입과 청소년에 대한 장학금 혜택, 취업 교육 확대 등이 중심이 됐다. 다만 과거 시위 때에도 정부가 반복적으로 내놓은 유화책이라는 점은 한계다. 물론 아시아계를 중심으로 우수 인력 이민자에게는 총급여의 30% 또는 상여금에 비과세 조치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마그레브와 아시아계 간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이들 소외된 지역의 청소년을 타깃으로 이슬람 원리주의가 극단적 행동을 이끌고 있다. ‘하나의 프랑스’라는 동화정책 원칙이 빈틈을 보이자 저소득·저학력의 대물림 속에서 희망을 잃은 이민 2·3세에 이슬람 원리주의가 파고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민정책 연구자인 윤인진 고려대 교수는 “동유럽 이민자를 이주 노동자 형태로 수용한 독일과 달리 프랑스는 과거 식민지 국가의 피지배자를 이민자로 받아 불안 요소를 키웠다”며 “특히 프랑스 건국이념의 하나인 ‘라이시테(정교분리·인종과 종교를 떠난 평등)’로 인한 기계적 평등이 이민자 권리를 신장시키는 방해 요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프랑스의 건국이념과 이슬람 교리의 충돌을 교훈 삼아 복합적인 문화·종교·인종 문제를 고려해 한국도 이민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