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성남종합버스터미널은 경기 동부권 최대 버스터미널이었다. 타지로 볼 일을 보러 가는 주민들로 붐볐고 자연스레 상권도 형성되며 늘상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2016년 수서역에 고속철도 SRT가 개통하면서 터미널은 쇠락의 길을 걸었고 엎친데덮친격으로 퍼진 코로나19는 몰락을 앞당겼다. 2019년 하루 평균 6700명이었던 승객수는 3500명까지 줄었다. 뜸해진 이용객의 발걸음에 노선은 단축됐고 길어진 배차 간격, 노후화된 시설은 이용자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적자를 견디다 못한 성남종합버스터미널은 올해 1월 결국 폐업했다. 인구감소지역을 중심으로 속출했던 버스터미널 폐업이 수도권 지역까지 번진 셈으로 흔들리는 버스 생태계의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다.
당정은 줄폐업 위기에 내몰린 버스 및 터미널 업계를 심폐소생하기 위해 터미널 내 물류창고 등 편익시설 입주를 허용을 추진한다. 세금 감면, 유가 보조금을 지원해 경영상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터미널 휴·폐업 사전신고제’도 도입해 시민들의 혼란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31일 국회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전일 국회에서 ‘버스-터미널 서비스 안정화 방안 협의회’를 열고 이같은 대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당정은 터미널 수익성 담보를 위해 입주시설 규제를 현실화하기로 했다. 현행 도시계획시설로 규정된 터미널은 입점업체가 음식점·카페 등으로 제한돼 있는데 물류창고 등 편익시설이 들어설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해 숨통을 틔워줄 방침이다. 20kg 이하로 제한되는 버스 소화물 운송규격도 우체국택배(30kg) 수준으로 완화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중소도시 터미널은 부지는 넓은 반면 땅값은 싸 냉동물류창고가 들어설 수 있다”며 “지역 내 물류 거점을 역할을 할 수 있게 육성할 구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마켓컬리·쿠팡프레시 등 새벽배송 업체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전국 터미널을 활용하면 새벽배송 인프라를 구축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터미널 역시 공실을 줄일 수 있는 ‘윈윈 모델’로 기대된다. 실제로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온라인 유통회사 컬리는 2019년 50여 개 터미널의 일부를 냉동창고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했으나 입점 제한에 가로 막혀 접은 적이 있다. 규제 완화 즉시 재추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터미널 목적, 유사 사례를 고려해 설치 가능 대상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숙박시설이 들어설 여지도 있다. 일본·홍콩·싱가포르에서 발달한 캡슐형 숙박시설 형태가 우선 검토 대상이다. 짧은 시간의 시간 단위 요금을 합리적으로 책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행법의 터미널 내 숙박시설 운영상 제약이 풀리면 새벽 첫차나 심야 시간 버스 승객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완화의 효과는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과 광역시 소재 터미널의 경영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이를 제외한 지방 중소형 터미널까지 온기가 퍼지려면 재정 지원이나 공적 부담금 보전 등의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당장 존폐 위기에 몰린 영세 버스터미널을 대상으로 재산세를 감면해준다. 필수 공공시설의 지위를 인정하고 혜택을 주는 대신 책임도 부과한다. 향후 버스터미널은 휴폐업 3~6개월 전에 그 사실을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지자체가 실태 파악, 임시 터미널 등 대책을 마련할 여유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버스 업체도 지원한다. 차량 교체 비용 부담이 운행 축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2025년 사용 연한이 종료되는 시외·고속버스의 연한을 1년 연장한다. 보다 안정적인 운행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이달 종료 예정인 경유·압축천연가스(CNG) 유가연동보조금 연장을 검토하고 대형면허 취득 비용 지원 사업도 확대한다. 탄력적인 수요 창출을 위해 전세버스 차고지를 현재 등록지에서 등록지 인접지에도 설치할 수 있게 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휴폐업신고제 도입과 차량 연한 연장 등을 위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입법도 서두르겠다”며 “벽지 노선 등 교통 이동권을 얻기 위해 버스터미널 관련 예산 확보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