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법무비서관과 법제처장을 둘 다 거쳐본 법조인은 제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행정 관련 법안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행정기본법을 직접 제정한 경험 등을 바탕으로 행정 법령의 입법 배경과 취지, 해결 방안에 대한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김형연(사법연수원 29기)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지난달 31일 서울경제와 만나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김 변호사가 특수행정과 기업 자문 등 특화 서비스 제공을 자신하는 배경에는 그가 지금껏 걸어온 길이 자리하고 있다. 항상 소신있는 자세로 재판·업무에 임한 게 법원을 거쳐 청와대로 향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고, 이곳들에서 얻은 경험·노하우가 그가 차별화된 법률서비스를 약속할 수 있는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지난 2000년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임관돼 17년간 ‘소신 판사’로 이름을 날렸다. 김 변호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친일파 후손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소송’을 꼽았다.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 등기부와 토지대장이 모두 소실되자 친일파 후손들이 일제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토지사정부를 근거로 국가에 땅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낸 사건이다.
김 변호사는 “당시 제가 속해있던 재판부가 처음으로 친일파 민사소송을 각하했다”며 “이는 2004년 국회가 친일파의 재산을 국가가 추적해서 몰수하는 친일 특별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 변호사에게도 충격으로 기억되는 재판이 하나 있다. 다른 재소자를 때린 사형수가 징역 3년을 선고한 1심에 불복해 항소를 한 사건이다. 김 변호사는 “사형수가 징역을 몇 년 받든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상소를 기각했다”며 “그런데 갑자기 사형수가 ‘어떻게 하루도 안 깎아주냐’며 호통을 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무심했구나,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며 “그 이후로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채찍질을 스스로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의 대쪽 같은 소신은 재판 뿐 아니라 사법 독립성이 흔들릴 때도 두각을 드러냈다. 2017년 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당시 그는 재판의 독립을 흔드는 사례에 대해 네 차례 대외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이는 김 변호사가 청와대에 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은 사법 행정에 관한 정책과 입법을 조율할 수 있는 자리”라며 “재판의 독립이라는 소신을 정책적으로 구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의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개헌안 확정 작업에 몰두했던 와중에 청와대가 관행적으로 사법부에 관여하던 업무를 모두 철폐했다고 자부했다. 이후 김 변호사는 법제처장으로도 임명되며 개별 행정 법령을 모두 아우르는 ‘행정기본법’을 만들었다. 행정법은 우리나라 법령의 90% 이상을 차지하는데, 민법이나 형법처럼 기본법이 없는 실정이었다.
김 변호사는 “(행정기본법이 없기 )때문에 법령마다 용어 정의나 불복기관 설정, 인허가 의제 등이 모두 달랐다”며 “행정법학자 100여명을 모아서 자문회를 만들고 행정기본법 초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행정기본법은 2021년부터 시행됐다.
김 변호사는 처음 변호사로 전직했을 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낯설었다고 회고했다. 공무에 20년간 몸을 담다가 사익을 위해 일하려고 하니 어색했다는 것이다. 그는 “하지만 곧 공직에서 본 세상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적어도 제 의뢰인 만큼은 서류 속에서 의도적으로 가공된 세계로 인해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