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표현이 ‘상저하고(上低下高)’입니다. 지난해 말부터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상반기 경제가 다소 어렵더라도 하반기엔 점차 회복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상반기를 지나 보니 상저하고 전망에 근거가 됐던 중국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효과가 기대만큼 크진 않았지만 마침 미국 경제가 연착륙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상저하고 전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경제 지표를 살펴보면 정부와 한은이 기대하는 대로 상저하고 흐름 자체는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 경기가 워낙 좋지 않은 기저효과로 발생하는 수치상 상저하고일 가능성이 큽니다. 성장률이나 경상수지 등이 모두 상반기 중 불황형 성장과 흑자에 빠진 상태입니다.
하반기 이후 개선되더라도 가계나 기업이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당초 기대했던 ‘상저하고’와는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마저도 회복하지 않는다면 ‘L자형’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마저 나옵니다.
먼저 한은이 5일 발표한 국민소득에 따르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6% 성장했습니다. 7월 발표된 속보치와 같은 수준입니다. 다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정부소비(-0.1%포인트), 건설투자(-0.5%포인트)가 하향 조정된 반면 설비투자(0.7%포인트), 수출(0.9%포인트), 수입(0.5%포인트) 등이 상향 수정됐습니다.
2분기 성장률은 속보치가 발표될 때부터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불황형 성장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순수출의 2분기 성장기여도는 1.4%포인트로 속보치보다 0.1%포인트 확대됐습니다. 설비투자가 성장률을 0.1%포인트 끌어올렸다고 해도 경제 핵심인 민간소비(-0.1%포인트), 정부소비(-0.4%포인트), 건설투자(-0.1%포인트) 등이 대부분 부진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입이 감소한 덕분에 성장한 셈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분기 성장률이 0.6%로 외형상 경제 성장세가 강화되는 모습이지만 민간소비, 건설투자, 수출 등 수요 부문의 감소에도 수입 감소 폭이 역성장 요인을 상쇄했기 때문에 사실상의 역성장이라고 평가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대외 건전성 핵심지표 중 하나인 경상수지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경상수지는 올해 1월(-42억 1000만 달러) 역대 최대 적자를 내면서 출발부터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5월부터는 흑자로 돌아선 상황입니다. 5월 19억 3000만 달러, 6월 58억 7000만 달러, 7월 35억 8000만 달러 등으로 개선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은에서는 하반기 첫 달인 7월부터 흑자가 발생한 만큼 흑자 기조가 명확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5월 이후 경상수지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성장률과 마찬가지로 수입 감소가 주도하는 불황형 흑자 흐름이 뚜렷합니다. 7월 상품수지가 42억 8000만 달러로 4개월 연속 흑자를 냈으나 이는 수출이 504억 3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87억 9000만 달러 줄어든 가운데 수입이 461억 5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135억 9000만 달러 감소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입 감소가 단순히 유가 하락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국내 소비·투자 위축과 맞물리면서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 형태를 보입니다. 원자재가 원유(-45.8%) 등을 중심으로 35.7%나 급감했으나 자본재와 소비재 수입도 동반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수송 장비(-13.3%), 반도체 제조 장비(-13.7%) 등 자본재가 12.5% 줄어들고 곡물(-20.3%), 승용차(-19.2%), 직접소비재(-9.6%) 등 소비재 역시 12.1%나 감소했습니다.
문제는 국제유가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오르면서 상품수지가 다시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두바이유 가격은 7일 기준 배럴당 91.49달러로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빠른 속도로 뛰어올랐습니다. 국제유가 상승은 우리나라에서 경상수지 적자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반면 수출은 중국 위기 등으로 개선세가 나타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수출이 증가세로 전환할 것이 예상되는 4분기까지는 불황형 흑자 흐름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수출 경기가 조기 회복되지 않으면 ‘상저하저’인 ‘L’자형 장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상저하고’로 볼 수 있는 ‘U’자형 회복 시나리오가 발생할 가능성은 점차 멀어지고 있습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어느 시나리오에 따르더라도 2022년 하반기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로 2023년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상반기보다 높아지는 ‘지표상 상저하고’가 예상된다”면서도 “시장에서 가계와 기업이 체감하는 경기는 다른 모습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