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 횟수가 줄면 병원을 덜 가도 되니 편해진다, 이런 단순한 논리가 아니에요. 백신을 접종하는 아이 입장에서는 주사에 찔리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접종 전후 과정에서의 오류가 줄어들 뿐 아니라 병원에 가서 다른 질병에 노출될 위험도 피할 수 있거든요. "
조혜경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12일 서울경제와 만나 "편의성과 안전성,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 효과 등을 고려할 때 6가 혼합백신의 장점은 분명하다"며 "실질적 혜택이 커지려면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갓 태어난 아기는 결핵·파상풍·백일해·홍역·풍진 등 거의 모든 감염병에 무방비 상태다. 질병관리청이 생후 12개월 안에 예방하도록 권장하는 감염병은 16종. 출생 직후 맞히는 B형간염을 시작으로 이들 질환을 각각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따로 맞힐 경우 최대 27번의 접종이 필요하다. 그만큼 병원 방문 횟수도 늘어난다. 맞벌이 부부라면 직장에 연차를 내야 하는데, 실수로라도 촘촘한 접종 스케줄을 놓치면 따라잡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면역력이 약한 아기를 데리고 수차례 병원을 오가는 동안 코로나19 등 각종 감염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크다. 여러 감염병을 동시에 예방할 수 있는 '혼합백신'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조 교수는 "영유아는 감염병 발생에 가장 취약한 집단"이라며 "어릴 때 백신을 접종해야 면역이 잘 생성될 수 있고 특정 연령대에 유행하는 병원체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국가에서 권장하는 백신을 적기에 접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고 설명했다.
간혹 1~2세에 백신을 접종하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해 뒤늦게 접종을 하러 오는 보호자들이 있는데, 자칫 질병을 얻거나 잘못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운좋게 필수예방접종을 거르고도 아이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접종하면서 '집단면역'이 생성된 덕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복잡한 영유아 기초예방접종을 간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기반으로 4가, 5가 DTP(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혼합백신이 NIP로 도입되어 있다. 특히 DTaP에 폴리오·b형헤모필루스인플루엔자까지 5개 질병을 한꺼번에 예방할 수 있는 5가백신이 주로 쓰인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1년 만 1세 영아의 94.3%가 5가백신으로 접종을 마쳤다. 5가백신에 B형간염을 더한 6가 혼합백신을 맞히면 접종횟수를 최대 2회 더 줄일 수 있다. B형간염 단독 백신과 5가 혼합백신을 접종할 경우 6번을 채워야 하는데, 6가 혼합백신으로 전환하면 총 4회 접종으로 동일한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게다는 의미다.
조 교수는 "유럽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6가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절반이 넘는 23개국이 6가백신을 필수접종으로 사용 중"이라며 "국내에서는 6가 혼합백신이 도입된지 3년이 넘었지만 NIP 대상이 아니라 비용 부담이 크다보니 접종률이 높진 않다"고 설명했다. 질병관리청은 작년 말부터 6가 DTaP 혼합백신을 포함해 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대상포진 백신 등의 NIP 도입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비용효과성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올 연말 6가백신의 우선순위가 높다고 인정된다면 예산을 책정받아 내년부터 무료접종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조 교수는 "혼합백신을 비롯해 아이들이 맞는 백신은 여전히 글로벌 제약회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가격협상 등 여러 절차를 거치느라 공급이 어려워지고 심한 경우 사업을 접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필수접종이 필요한 백신의 수요와 공급이 원활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부가 더욱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