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와 합병을 추진하던 벤처캐피탈(VC) 캡스톤파트너스와 HB인베스트먼트가 직상장으로 노선을 선회해 증시 입성을 추진한다.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캡스톤은 다음 주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코스닥 상장을 위한 공모 절차에 돌입한다. 늦어도 추석 연휴 전까지 신고서 제출을 마무리하고 연내 상장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HB인베는 7일 상장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해 내년 상반기 코스닥 입성이 예상된다. 양사 모두 전액 신주 발행 형태로 IPO를 준비 중이다.
앞서 캡스톤은 지난해 스팩 합병을 추진하던 당시 예상 기업가치를 약 500억 원으로 책정했는데 이번 상장 과정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기업가치를 제시할 것으로 파악됐다. HB인베의 기업 가치도 최초에 제시했던 700억 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된 고금리와 ‘대어’들의 IPO 철회로 벤처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상장 VC들의 실적이 악화한 데 따른 영향이다. DSC인베스트먼트(241520)와 대성창투(027830), 린드먼아시아 같은 주요 VC들의 주가는 올 들어 우하향 곡선을 그렸고, 현재 지난해 하반기를 하회하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공모가 산출 과정에서 비교평가 대상이 되는 유사 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지니 신규 상장을 준비하는 VC들도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려워졌다.
캡스톤과 HB인베가 업계 혹한기에도 불구하고 직상장을 추진하는 건 국내 1세대 VC로서 보유한 투자 포트폴리오가 우량하고 투자금 회수(엑시트) 실적도 우수하다는 자신감이 배경이다. 송은강 캡스톤 대표와 황유선 HB인베 대표는 20년 넘게 벤처투자에 몸 담아온 베테랑이기도 하다.
캡스톤은 6월 말 상장한 시큐센(232830)의 엑시트를 마쳤고, 올 IPO 시장 첫 번째 조 단위 ‘대어’인 파두(440110)의 엑시트도 단계적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캡스톤은 당근마켓, 직방, 컬리 등도 주요 포트폴리오로 보유하고 있다. HB인베 역시 초기 투자에 참여한 밀리의서재가 하반기 증시 입성을 예고하고 있고 슈어소프트테크·코어라인소프트·자비스앤빌런즈(삼쩜삼) 등 다수 기업이 IPO를 추진 중이다.
당초 캡스톤과 HB인베는 지난해 10월 기업공개(IPO) 시장이 침체기에 빠지자 공모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스팩 합병을 추진했다. 모두 NH투자증권(005940)이 만든 스팩이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합병 절차는 벤처투자법 시행령에 가로막혔다. 시행령 25조 2항은 중소기업 창업투자회사가 벤처투자조합의 주식을 취득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캡스톤·HB인베와 합병하려고 하는 스팩의 발기인에 제3의 VC가 포함돼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상장 주관사 측에서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합병시 스팩 발기인으로 참여한 VC는 증시에 입성하는 VC의 지분을 소유하게 된다.
결국 캡스톤과 HB인베는 올 5월 스팩 합병 계획을 철회했다. 일각에서 주관사 책임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들은 오랜 시간 상장 준비를 함께 해 온 NH투자증권이 최적임자라는 판단 아래 대표 주관 계약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상장 스팩은 발기인에 VC가 포함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캡스톤과 HB인베 입장에서는 스팩 합병을 기다리는 것보다 일반 상장을 선택하는 게 IPO를 더 빠르게 마칠 수 있는 전략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