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재테크

새출발기금에 발목잡힌 '우량 공기업'…5년간 충당금 1조 쌓아야

[캠코 출범후 첫 적자]

◆ 재무위험 커지는 캠코

부실채권 매입 할당량만 30조

2027년까지 누적적자 7500억

당국은 대출 탕감액 추가확대 검토

공사채 더 찍어 부채비율 증가땐

캠코 민간 손실 흡수여력 축소 우려





1999년 사명을 바꿔 출범한 이래 단 한 번도 손실을 낸 적이 없을 정도로 ‘우량 공기업’으로 불리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올해 적자가 예상되는 것은 새출발기금 사업 때문이다. 캠코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실 대출을 사들여 채무를 조정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캠코가 채권을 사올 때 들인 돈보다 차주가 실제 상환하는 금액이 적다면 손실은 오롯이 캠코의 몫이 된다. 캠코는 차주들이 돈을 갚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미리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했고 충당금 적립액이 늘면서 원래는 흑자여야 할 실적이 적자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12일 캠코가 정부에 제출한 ‘중장기 재무 계획’에 따르면 캠코의 대손충당금은 올해 403억 원에서 2027년 4653억 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5년간 적립할 충당금 규모는 1조 원에 이른다. 새출발기금으로 매입해야 할 부실채권의 규모가 30조 원에 달하는 만큼 차주들이 상환하지 못하는 상황이 늘어날 경우를 대비해 충당금 적립액을 꾸준히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손충당금 적립액을 늘리게 되면 금융기관의 실적은 악영향을 받게 된다. 실제로 캠코는 올해 81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손충당금 적립 규모가 예년 수준이었다면 322억 원의 순익을 올렸을 텐데 부실채권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번 돈을 모두 써도 부족한 상황이 된 셈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캠코의 당기순손실은 내년 593억 원으로 올라선 뒤 매해 늘어 2027년에는 4138억 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해마다 평균 1500억 원 이상의 손실을 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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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차주가 정상적으로 채무를 상환한다면 향후 손실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상환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손충당금을 설정할 때 과거 부실채권의 회수율을 고려해 산정한다”면서 “과거 실적을 봤을 때 ‘이 정도는 앞으로 회수하기 어렵다’고 보고 미리 손실로 잡아두는 것인 만큼 환입액이 크게 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캠코의 손실은 지금보다 더 불어날 수도 있다. 금융 당국이 새출발기금을 통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대출 탕감액을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책 지원 대상은 코로나 시기 피해를 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 부실 혹은 부실 우려 차주인데 당국은 이를 영세 사업자 중 부실 혹은 부실 우려 차주로 바꾸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영세업자 범위를 ‘연 매출 8000만 원 이하’로 설정하는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럴 경우 정책 지원 대상은 기존(220만 명)보다 155만 명이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떠안아야 할 부실채권 규모도 기존(30조 원)보다 7조 5000억 원 더 늘어나게 된다.

실적 악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당장 부실채권을 매입할 돈이 없다 보니 캠코의 차입금도 크게 늘어나 재무구조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캠코의 부채는 올해(7조 6154억 원)부터 2027년까지 매해 평균 1조 5300억 원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채비율도 함께 급등한다. 공사의 부채비율은 당장 내년부터 200%를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우량 공기업이 한순간에 부실 공기업으로 바뀌는 것이다. 정부는 부채비율 200% 이상의 공공기관을 ‘재무 위험 기관’으로 지정하고 특별 관리 대상에 올린다. 재무 위험 기관은 자산 매각과 사업 조정, 자본 확충 방안을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캠코가 새출발기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공사채 발행을 늘려 부채비율이 앞으로 더 늘어나게 되면 캠코의 민간 손실 흡수 여력이 전보다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사채 발행량이 늘어난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 경제에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발생해 기업과 가계 부실이 더 늘어날 경우 캠코가 채권 추가 발행에 부담을 느껴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데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캠코는 우선 부동산 자산 등을 처분해 5년간 558억 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하지만 불어난 손실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른 금액이다. 이 때문에 새출발기금 대상을 무조건 늘리기보다 차주의 부실 가능성 등을 더 면밀히 검토하고 채권을 회수할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등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캠코 관계자는 “새출발기금 연결 손익을 제외한 캠코 고유 사업의 당기순이익은 통상적인 300억 원에서 600억 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새출발기금 매입 채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채무 조정을 실시해 채무자 재기를 지원하고 자체 재원을 활용한 사업 운용으로 차입을 최소화해 점진적으로 손익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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