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강 변 우크라이나 항구에 위치한 건물들이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파괴돼 있다. AFP연합뉴스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가 15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금지를 연장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이 동유럽의 곡물가 폭락을 막기 위해 올봄 시행했던 수입 금지 조치를 끝내기로 했지만 이들 국가는 다른 행보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의 공습 탓에 차질을 빚고 있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이 또 하나의 악재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폴란드는 이날 네 가지 우크라이나산 곡물(밀·옥수수·유채·해바라기씨)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유지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이 곡물들로 만든 식품도 수입 금지 대상에 포함한다고 밝혔다. 헝가리도 수입 금지 대상을 곡물, 채소, 일부 육류 제품 등 24개 농식품으로 확대했으며 슬로바키아 역시 수입 금지 조치를 연장하기로 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16일 X(옛 트위터)를 통해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의 관료들이 유럽 농민들의 문제를 또 외면하고 있어 3개국이 자체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EU가 5월에 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불가리아·루마니아 등 5개국에 한해 도입했던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금지 조치를 16일부터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대응이다. 지난해 EU는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동유럽 국가를 무관세로 경유해 아프리카·중동에 수출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우크라이나의 주된 수출 통로였던 흑해 항로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사실상 막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값싼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동유럽 국가에 쏟아지면서 곡물 가격이 폭락하자 이들 국가에서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이러한 배경에서 실시된 곡물 수입 금지 조치를 끝내기로 한 데 대해 EU는 “5개국의 시장 왜곡이 사라졌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우크라이나는 (이들 국가로의) 곡물 급증을 막기 위해 30일 이내에 수출허가제 같은 법적 조치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가 단일 대오에서 이탈한 것은 유권자의 표심을 의식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슬로바키아와 폴란드는 각각 이달 30일과 다음 달 15일 총선을 앞두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실망감을 나타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밤 연설에서 “유럽의 단결은 이웃 국가들과 양자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웃 국가들의 결정이 이러하다면 우크라이나도 나름의 방식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곡물 수입 금지 연장이) 국제 곡물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면서도 “우크라이나의 길고 긴 곡물 수난사에 또 한 줄이 추가됐다”고 평했다.
